예타 운하(스웨덴어: Göta kanal)는 19세기 초반에 건립된 스웨덴의 운하이다. 스웨덴 서부 연안에 위치한 예테보리에서 예타강, 트롤헤탄 운하, 베네른호, 베테른호를 거쳐 발트해와 접한 쇠데르셰핑까지 연결하는 수로 체계의 일부분이다.
역사
예타 운하 건설의 구상은 1516년 린셰핑의 주교 한스 브라스크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착공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독일 태생의 스웨덴 해군 장교였던 발차르 폰 플라텐(Baltzar von Platen)이 칼 13세 국왕에게 운하 건설을 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스웨덴 정부와 국왕은 운하 건설을 통해 국가 근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적극 지지하였다.
공사는 1810년 4월 11일에 시작되었으며, 총 건설 비용으로 2,400만 릭스달레르(riksdaler)가 투입되었다. 이는 그 시점까지 스웨덴에서 수행된 가장 대규모의 토목 사업이었다. 영국 출신의 토목 기사 토머스 텔퍼드(Thomas Telford)가 운하 노선의 초기 설계를 담당하고 1810년 스웨덴을 방문하여 초기 공사 일부를 감독하였다. 또한 많은 영국인 기술자와 장인, 그리고 각종 장비가 운하 공사에 동원되었다. 운하 건설에 필요한 기중기와 준설선 등의 기계 장치를 생산하기 위해 모탈라(Motala)에 모탈라 공장(Motala Verkstad)이 설립되었으며, 이 시설은 "스웨덴 공업의 요람"이라고도 불린다.
예타 운하는 1832년 9월 26일에 정식으로 개통되었다. 운하 건설의 최대 목적 중 하나는 발트해로 왕래하는 선박들이 덴마크-노르웨이가 부과한 외레순 통행세를 우회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851년 이후 크림 전쟁으로 인한 무역 중단과 1855년 스웨덴 최초의 철도 노선 개통, 그리고 덴마크가 외레순 통행세를 폐지하면서 운하의 상업적 유용성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규모와 특징
예타 운하 자체의 수로 길이는 약 190km이며, 이 중 약 87km가 인공으로 굴착되거나 폭파되어 만들어진 구간이다. 수로 폭은 7~14m, 최대 수심은 약 3m이다. 다만 예타강과 트롤헤탄 운하, 여러 호수를 포함한 전체 수로 체계의 길이는 약 390km에 달한다. 운하에는 총 58개의 갑문이 있으며, 최고점은 해발 91.8m이다.
현재 예타 운하는 주로 관광 및 레저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매년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운하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