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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체리

예니체리(오스만 튀르크어: يڭيچرى, yeniçeri)는 오스만 제국의 정예 보병 군단이자 술탄의 직속 친위대이다. '예니체리'라는 명칭은 튀르크어 '예니 체리(yeni çeri)'에서 유래한 말로, "새로운 군대" 또는 "새로운 병사"라는 뜻이다.

역사

예니체리는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1세(재위 1361~1389) 시기에 처음 창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2대 술탄 오르한 1세(재위 1326~1361) 시기로 보기도 한다. 1826년 술탄 마무드 2세에 의해 강제 해산될 때까지 약 460여 년간 존속하였다.

징집과 교육

초기 예니체리는 주로 전쟁 포로나 발칸 지역의 기독교도 소년들을 강제 징집하여 충원하였다(데브시르메 제도). 징집된 소년들은 콘스탄티니예(현 이스탄불)로 보내져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튀르크어와 이슬람 교리를 익히고, 6년 이상의 엄격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술탄과 알라 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정예 병사로 양성되었다. 초기에는 결혼이 금지되고 병영 밖에서 생활할 수 없었으나, 16세기에 이르러 일부 규정이 완화되었다.

역할

예니체리는 평시에는 수도 콘스탄티니예의 경비와 치안 유지, 소방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전시에는 최정예 부대로 참전하여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상비군으로서 정기적인 급여를 지급받았고, 특별한 군복을 착용하였으며, 다른 이슬람교도와 달리 콧수염 외에는 수염을 기르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변질과 몰락

시간이 흐르면서 예니체리는 막강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권력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16세기 이후에는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군대 현대화 시도를 반대하며 빈번히 반란을 일으켰다. 1622년에는 예니체리를 해체하려 했던 술탄 오스만 2세를 암살하였고, 1807년에는 군대를 유럽식으로 개혁하려던 셀림 3세를 폐위시켰다. 19세기 초에는 약 13만 5천 명에 달하는 병력과 이에 따른 재정 압박, 군사적 비효율성, 개혁 저지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1826년, 마무드 2세는 새로운 유럽식 군대를 창설한다는 소식에 예니체리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포병을 동원하여 콘스탄티니예의 예니체리 막사에 일제 사격을 감행하여 반란군 대부분을 학살하였다(1826년 6월 14일~15일). 이 사건을 '길길리 올라(행운의 사건)'라고 부른다. 살아남은 자들은 유배되거나 처형되었고, 2년 후 남은 부대까지 완전히 해산되면서 예니체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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