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태(永泰)는 중국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 제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란(蕭鸞)의 두 번째 연호이다. 498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간 사용되었다. 명제가 498년 4월 3일(율리우스력 5월 9일)에 기존 연호인 건무(建武)에서 영태로 개원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명제가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폐제(後廢帝) 소보권(蕭寶卷)이 남은 6개월 동안 이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이후 499년 1월 1일(율리우스력 1월 28일)에 연호를 영원(永元)으로 개원하면서 영태 연호는 종료되었다.
영태 연호가 사용된 시기는 남제의 정국이 혼란하던 때로, 명제 소란은 방계 황족 출신으로서 정통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고제 소도성과 무제 소색의 후손들을 대거 숙청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를 펼쳤다. 명제 사망 후 즉위한 소보권은 폭정을 일삼아 남제의 멸망을 앞당겼다.
동시대에 북위(北魏)에서는 태화(太和, 477년~500년) 연호가 사용되었고, 유연(柔然)에서는 태안(太安, 492년~505년) 연호가 사용되었다. 같은 이름의 연호로는 후대 당(唐)나라에서 765년부터 766년까지 사용된 영태(永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