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천운정(榮州 天雲亭)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2009년 10월 12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7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 지정번호 폐지에 따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개요
영주 천운정은 1588년(선조 21)에 이조판서를 지낸 백암 김륵(金玏, 1540~1616)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김륵은 본관이 예안(禮安), 자가 희옥(希玉), 호가 백암(柏巖)이며,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그는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한 뒤 영월군수, 경상우도관찰사, 충청도관찰사, 안동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전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김륵의 저서로는 『백암집(栢巖集)』이 있다.
유래와 명칭
천운정이라는 이름은 남송대 성리학자인 주자(朱熹)가 지은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의 제2구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天光雲影共徘徊)"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김륵은 영주 시내의 구학정(龜鶴亭)에 거처하고 있었으나 그곳이 번잡하다고 여겨, 번계(樊溪)에 천운정을 짓고 만년을 보냈다.
역사적 변천
천운정은 건립 후 퇴락하여 무너졌으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한차례 이건되었고, 이후 다시 붕괴되어 1752년(영조 28)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하고 그 앞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김륵이 영천(현재 영주시) 지역에 지은 정자는 서쪽의 귀학정·서벽정, 동쪽의 천운정으로 모두 세 정자였으나, 서벽정은 폐지되었고 귀학정은 1988년 봉화읍 문단리로 이건되었다. 천운정은 대대로 후손들이 지켜왔다.
구조와 형태
영주 천운정은 학문과 휴양을 위한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평면은 2통간(通間) 구조로 온돌방과 마루 1칸을 연이어 배치하였다. 전면과 오른쪽에는 계자각(鷄子脚) 헌함(軒檻)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다. 상부가구는 간략한 3량가(三樑架)이고, 대들보 위에 첨차와 소로를 끼운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으로 마룻대를 받고 있다. 마루 상부에는 마룻대를 마루 복판까지 빼내 끝단에 짧은 받침목을 달동자로 결구시키고, 여기에 추녀와 서까래를 결구시켰다. 구조 양식은 뛰어나지 않으나, 평면 형식은 후대의 이건과 중건 과정에서도 큰 변화 없이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황
천운정 앞에는 연못이 있어 매년 연꽃이 만발하며, 정자 오른쪽에는 김륵의 둘째 아들인 번계 김지선(金止善, 1573~1622)이 건립한 살림집 양진재(養眞齋)가 자리 잡고 있다. 천운정에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가 쓴 「천운정(天雲亭)」 편액과 「동포서당(東浦書堂)」, 동래 정언충(鄭彦忠)의 「중건천운정기」 현판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예안김씨 가문의 국가유산인 영주 석포리 야일당이 있다.
의의와 평가
영주 천운정은 김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은둔과 자연 회귀적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