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이거(永陽君 李岠, 1521년 음력 4월 24일 ~ 1561년 음력 7월 27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제11대 국왕 중종(中宗)의 서4남이다. 어머니는 창빈 안씨(昌嬪 安氏)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유일한 친형이자 제14대 국왕 선조(宣祖)의 큰아버지에 해당한다.
가계와 출신
영양군은 1521년(중종 16년) 중종과 창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창빈 안씨는 안산 안씨 출신으로, 적순부위를 지낸 안탄대(安坦大)의 딸이다. 영양군의 친남매로는 여동생 정신옹주(貞信翁主)와 남동생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초명 덕흥군)이 있다. 왕위 계보상으로는 인종(仁宗)의 이복 서제이며 명종(明宗)에게는 서형이 된다.
자는 탁보(卓甫), 시호는 성도(成悼)이다. 이외의 호나 자세한 생애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생애와 가족
영양군은 현감을 지내고 증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안세형(安世亨)의 딸인 경양군부인(景陽郡夫人) 순흥 안씨 안방향(安芳香, 1522~1594)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친자녀가 없었고, 이에 성종(成宗)의 12서자인 무산군(茂山君) 이종(李悰)의 손자이자 부안도정 이석수의 아들인 흥녕부정(興寧副正) 이수전(李秀荃)을 양자로 삼아 가계를 이었다. 이후 이수전은 흥녕군(興寧君)으로 승차(陞差)되었으며, 1614년(광해군 6년)에는 위성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영양군은 1561년(명종 16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그의 묘소는 처음 경기도 과천현 북면 동작리(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일대)의 창빈 안씨 묘소 우측 언덕에 마련되었으며, 이후 부인 안방향과 합장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동작동 국립묘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묘소는 실전(失傳)되었다. 한편 1581년(선조 14년) 2월 26일에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 사시리 후록 인좌원으로 이장되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묘비는 1941년에 세워졌으며, 한성부판윤과 홍문관대제학을 지낸 민경식(閔景植)이 비문을 짓고, 홍문관부제학과 규장각검열을 지낸 이범석(李範錫)이 글씨를 썼다.
후손과 파보
영양군은 전주 이씨 영양군파(永陽君派)의 파시조(派始祖)이다. 그의 양자인 흥녕군 이수전을 통해 후손이 이어졌으며, 손자로는 풍해군(豊海君) 이잠(李潛, 1585~1648) 등이 있다. 영양군의 양자 가계에서는 흥녕군·풍해군·능봉군 등이 배출되어 오늘날 영양군파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 의의
영양군은 왕자로서 정치적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덕흥대원군의 친형이자 선조의 큰아버지라는 가계적 위치로 인해 조선 중기 왕실 구성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의 가계는 선조 즉위 이후 왕실 친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전주 이씨 영양군파로 이어져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