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靈鼗, Yeongdo)
영도는 한국 전통 음악, 특히 궁중 제례악에서 사용되던 타악기이다. 팔음(八音) 중 혁부(革部)에 속하며, 지신(地神) 또는 지기(地祇), 즉 땅의 신령을 제사하는 제례에서 영고(靈鼓)와 짝을 이루어 사용된 아악기(雅樂器)이다.
구조와 형태
영도는 작은 북 네 개와 나무 자루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북은 양면(兩面)으로 북면이 모두 여덟 개이다. 네 개의 북통을 십자(十字) 모양으로 서로 엇갈리게 겹쳐 긴 나무자루에 꽂아 매단 형태이다. 북통에는 노란색 칠을 하며, 북통 양쪽 중앙에는 가죽끈을 단 양이(兩耳, 또는 방이/旁耳)라는 고리가 달려 있다.
자루는 북통 아래 부분의 길이가 3척 3푼이며, 각 북의 길이는 9척 6푼, 가죽면의 지름은 각 4촌 3푼이다. 자루 꼭대기에는 흰 기러기 모양의 나무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국립국악원 자료에 따르면, 현재는 나무 자루를 꽂는 받침대로 사호(四虎, 사방을 향해 엎드린 네 마리 호랑이)가 사용된다.
연주 방법
연주자는 양손으로 자루를 잡고 좌우로 흔들거나 돌리면, 양이에 달린 가죽끈이 스스로 북면을 때려 소리를 낸다. 국악사전에 따르면 헌가(軒架, 대한제국 시기에는 궁가/宮架)에서 음악을 시작할 때 양손으로 자루를 잡고 좌우로 네 번 돌려 소리를 내며,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작(樂作)의 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
용도 및 역사
『주례(周禮)』 「고인(鼓人)」에 영도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대부터 궁중의 지기 제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1454)에 수록된 영도는 세 개의 북을 꿰어 북면이 여섯 개인 형태였으나,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이르러 네 개의 북을 꿰어 북면이 여덟 개인 형태로 발전하였다.
조선 세종 대의 사직 헌가에서는 영도 없이 영고만 세 대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영도가 사직 헌가에 영고의 짝으로 편성된 것은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1474)에서 확인된다. 이후 편성 구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악학궤범』의 시용(時用) 아악 헌가도설에서는 영고 3대·영도 6대로 편성되었고,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1783)와 『춘관통고(春官通考)』(1788)에 이르러서는 영고가 빠지고 영도만 두 대로 줄어든 편성도 나타난다.
사직 제례는 1908년에 폐지되었다가 1988년 복원되었으며, 2014년부터 국립국악원에서 『사직서의궤』(1781)에 준하여 사직제례를 재현하면서 영고 한 대와 영도 두 대가 진설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원래 악기는 6·25전쟁 등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것은 후대에 복원·제작된 것이다.
상징적 의미
영도의 노란색과 여덟 개의 북면은 제례의 대상을 상징하며, 전통 사회의 오행 사상과 연계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면이 여덟 개인 이유는 지기 제례의 강신악이 8변하기 때문이며, 이는 지기의 궁인 임종이 미위(未位)의 율이고 을(乙)을 간(幹)으로 하며 미와 을의 수가 모두 8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오늘날 영도는 사직 제례악 연주에만 쓰이며, 국립국악원에 복원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