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학파(嶺南學派)는 조선시대 영남(嶺南) 지방, 즉 현재의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문상의 유파를 총칭하는 용어이다. 영남학파(嶺學派)·퇴계학파(退溪學派)·남명학파(南冥學派)·여헌학파(旅軒學派)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한국 성리학의 주요 유파 가운데 하나로 인정된다.
학파의 기원과 계보
영남학파의 학맥은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에서 비롯하여 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를 거쳐 조선 초기의 김종직(金宗直, 1431~1491)에게 계승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직을 영수로 한 이른바 영학파는 도학과 문학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문하에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이 영학파는 연산군대에 이르러 훈구파와의 대립으로 정치적 희생을 겪기도 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영남학파는 크게 세 갈래로 분화되었다. 영남우도(嶺南右道) 지역에서는 조식(曺植)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가 형성되었고, 영남좌도(嶺南左道) 지역에서는 이황(李滉, 1501~1570)을 종주로 하는 퇴계학파가 형성되었다. 이외에도 장현광(張顯光)을 주축으로 하는 여헌학파가 있었다.
퇴계학파의 학문적 특징
퇴계학파는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 영남 학파로, 이황의 철학 사상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사칠이기분대설(四七理氣分對說)을 계승·발전시켰다. 후대에 이르러 이 퇴계학파의 학문은 점차 주리설(主理說)로 발전하였다. 이황의 문하에서는 조목(趙穆)·기대승(奇大升)·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 등이, 사숙(私淑) 계통에서는 정경세(鄭經世)·허목(許穆)·이현일(李玄逸)·이상정(李象靖)·이진상(李震相)·곽종석(郭鍾錫) 등이 배출되었다.
남명학파와 여헌학파
남명학파는 조식이 중시한 '경의(敬義)'의 실천을 학풍으로 삼았으며, 공리공담을 배척하고 실천궁행을 강조하였다. 문하에서 오건(吳健)·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곽재우(郭再祐) 등이 배출되었다. 여헌학파의 장현광은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배척하고 기발이본설(氣發理本說)을 주장했으나, 평소 퇴계학파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퇴계학을 존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거시적 관점에서는 퇴계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학파의 전개와 의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식학파의 학맥은 쇠잔해지는 반면 퇴계학파의 학맥은 점차 번성하여, 영남 지역의 학자들이 대체로 퇴계학파로 흡수되면서 퇴계학파가 영남학파의 대명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영남학파는 기호학파의 율곡학파와 이기론(理氣論)·사칠론(四七論)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을 전개하면서 조선 후기 한국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의 공신력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