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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묘

영규대사묘(靈圭大師墓)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번지에 위치한 조선시대 승병장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의 무덤이다. 1977년 1월 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에 따라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현재는 갑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영규대사는 본관이 밀양(密陽)이며 속성(俗姓)은 박씨이고,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출생으로, 계룡산 갑사(甲寺)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불법을 공부하였고, 갑사 청련암(靑蓮庵)과 금산 보석사(寶石寺)에서 수도하며 무예를 익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장이 되었으며, 의병장 조헌(趙憲)과 합세하여 1592년 8월 1일 청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쳐 임진왜란 발발 이후 최초의 지상전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금산전투에서 7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묘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승려는 일반적으로 임종 후 화장하는 것이 관례이나, 갑사의 승려들이 특별히 그가 숨을 거둔 장소에 무덤을 조성하였다.

묘역은 해발 150m의 산록 경사면을 깎아 북향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 높이는 3m, 둘레는 23m이다. 봉분과 상석 사이에는 높이 87cm의 묘비가 있는데, 앞면에는 '의병승장군영규지묘(義兵僧將軍靈圭之墓)'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숭정후삼경오사월일립칠대방손박경진경태봉사(崇禎後三庚午四月日立七代傍孫朴景震景兌封祀)'라는 기록이 있어 1810년(순조 10)에 방계 후손인 박경진(朴景震)과 박경태(朴景兌)가 묘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상석 전면에는 '의병승장기허당(義兵僧將騎虛堂)'이라고 새겨져 있다.

선조는 영규대사의 공을 인정하여 사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추증하였으며,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와 밀양의 표충사(表忠祠)에 제향되었다. 갑사 경내에는 영규대사와 휴정, 유정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원(表忠院)이 있다. 매년 갑사에서는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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