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미얀마 전쟁은 19세기 동안 영국과 미얀마(당시 꼰바웅 왕조) 사이에 벌어진 세 차례의 주요 분쟁을 지칭한다. 이 전쟁들은 영국의 미얀마 완전 정복으로 이어졌으며, 미얀마의 주권 상실과 영국 식민지 지배의 시작을 알렸다.
배경
19세기 초,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미얀마의 꼰바웅 왕조 또한 주변 지역(아삼, 마니푸르, 아라칸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양측의 국경이 맞닿게 되었다. 영국은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과 무역로에 관심을 가졌으며, 미얀마의 팽창 정책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 안보에 위협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야기했다.
주요 전쟁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 (1824년 ~ 1826년)
- 원인: 미얀마군의 영국령 인도 국경 침범과 영국의 상업적 이해관계 충돌.
- 경과 및 결과: 영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리했으며, 얀다보 조약(Treaty of Yandabo)이 체결되었다. 미얀마는 아라칸(Arakan)과 테나세림(Tenasserim)을 영국에 할양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로써 미얀마는 상당한 영토를 잃었으며, 영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 (1852년 ~ 1853년)
- 원인: 영국 상인들의 불만, 미얀마 정부의 영국인 대우 문제, 그리고 영국의 하미얀마(Lower Burma) 장악 욕구.
- 경과 및 결과: 영국이 또다시 승리하여 페구(Pegu) 지방, 즉 하미얀마 전체를 합병했다. 이로써 미얀마는 바다로의 직접적인 접근권을 대부분 잃었으며, 경제적으로 영국의 통제에 더욱 놓이게 되었다.
제3차 영국-미얀마 전쟁 (1885년 ~ 1886년)
- 원인: 미얀마 국왕 티보(Thibaw)의 프랑스와의 관계 강화 시도, 영국과의 무역 분쟁 및 영국의 상미얀마(Upper Burma) 완전 장악 의지. 영국은 미얀마의 독립적인 외교 정책과 상업적 독점을 자국의 인도 식민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 경과 및 결과: 영국군이 신속하게 수도 만달레이를 점령하고 티보 국왕을 폐위시켰다. 1886년 1월 1일, 상미얀마 전역이 영국령 인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이로써 꼰바웅 왕조는 멸망하고, 미얀마의 독립은 막을 내렸다.
결과 및 영향
영국-미얀마 전쟁은 미얀마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얀마는 1886년부터 1937년까지 영국령 인도의 한 주로 편입되었고, 이후 별도의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8년에 독립했다. 이 전쟁들은 미얀마의 주권을 빼앗고 오랜 기간에 걸친 식민지 지배를 초래하여 미얀마 사회, 경제, 정치 및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현대 미얀마 민족주의 형성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