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공습(영어: the Blitz)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9월 7일부터 1941년 5월까지 나치 독일의 공군(루프트바페)이 영국 본토에 감행한 일련의 폭격 및 공습 작전을 일컫는 용어이다. "블리츠(Blitz)"라는 명칭은 독일어 "블리츠크리크(Blitzkrieg)"의 줄임말로, "번개전(전격전)"이라는 뜻을 지닌 독일식 기습 공격 방식에서 유래하였다.
배경 및 경위
영국 대공습은 1940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독일 공군과 영국 왕립 공군(RAF) 사이에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배틀 오브 브리튼)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은 영국 본토 침공 작전(바다사자 작전)의 전제 조건으로 영국 상공의 제공권을 확보하려 하였으나, 영국 왕립 공군의 방어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40년 9월 독일 공군이 런던을 폭격하자, 영국 측도 베를린을 보복 폭격하였고, 이에 히틀러와 괴링은 전략을 변경하여 민간인과 도시를 대상으로 한 폭격에 나서게 되었다.
주요 공습 대상 및 규모
1940년 9월 7일부터 독일 공군은 57일 중 56일 동안 런던을 체계적으로 폭격하였다. 이후 공습 대상은 런던 외에도 리버풀, 버밍엄, 코번트리, 맨체스터, 셰필드, 브리스틀, 플리머스, 사우샘프턴, 벨파스트, 글래스고 등 영국의 주요 항구 도시와 산업 중심지로 확대되었다. 특히 1940년 11월 14일 코번트리 공습은 독일 공군이 야간에 감행한 대규모 폭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공군은 영국 왕립 공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1940년 10월 이후 주간 작전을 점차 줄이고 야간 공습을 선호하게 되었다.
피해 규모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인해 전쟁 기간 중 4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이 중 거의 절반이 런던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런던에서는 100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 부상자는 약 4만 6천 명에서 많게는 약 13만 9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한다.
결과 및 영향
8개월간 지속된 폭격은 영국인들의 사기를 꺾거나 전쟁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영국의 전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도시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 회복하는 데 10일에서 15일이 걸렸으며, 일부 도시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폭격 작전은 영국의 전쟁 생산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생산은 계속 증가하였다. 독일 공군의 공세가 전략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는 독일 공군 최고 사령부가 영국의 전쟁 산업을 파괴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고, 여러 산업을 분산적으로 공격하여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지 못했던 점이 지적된다.
민방위 및 대피소
영국 정부는 전쟁 이전부터 공습에 대비한 민방위 계획을 수립하였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부터 영국에서는 정전(소등) 조치가 시행되었고, 여성과 아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소개령이 실시되었다. 런던에서는 앤더슨 셸터(가정용 철제 방공호)와 모리슨 셸터(실내용 방공호)가 보급되었으며, 1940년 9월 이후에는 런던 지하철 승강장이 대규모 공동 대피소로 활용되었다. 지하철역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민 수는 최고 약 17만 7천 명에 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평가
영국 대공습은 독일 공군의 전략적 패배로 평가되며, 1941년 5월 독일의 소련 침공 준비(바르바로사 작전)로 인해 대규모 공습이 종료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런던은 V-1 비행폭탄과 V-2 로켓에 의한 공격을 다시 받았으나, 이는 영국 대공습(블리츠)과 구분되어 다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