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영국 관념론(영국 관념주의, British Idealism)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두에 걸쳐 영국에서 번성한 철학·정치철학 유파와 그 사상이다. 이 운동은 절대관념론(absolute idealism)의 한 갈래로서, 당시 영국 학계를 지배하던 경험론과 공리주의에 맞서 이마누엘 칸트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독일 관념론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전개하였다.
역사적 배경
선구자
19세기 초두, 영국에서 낭만주의 운동의 일부로 새뮤얼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독일 관념론을 영국에 소개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전기(傳記)나 평론의 형태였으며, 체계적인 철학 이론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후 1865년 제임스 허치슨 스털링(James Hutchison Stirling)의 《헤겔의 비밀》(The Secret of Hegel) 출간을 계기로 헤겔 사상이 영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최성기
영국 관념론의 중심 인물은 토머스 힐 그린(T. H. Green, 1836–1882)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활약하며 칸트와 헤겔의 영향을 받아 경험론·공리주의·유물론에 대항하는 체계적인 관념주의 철학을 수립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다음이 있다.
- 토머스 힐 그린(T. H. Green) — 《윤리학 서론》(Prolegomena to Ethics, 1883), 《정치적 의무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Obligation, 1901)
- 프랜시스 허버트 브래들리(F. H. Bradley, 1846–1924) — 《윤리학 연구》(Ethical Studies, 1876), 《현상과 진실재》(Appearance and Reality, 1893)
- 버나드 보전켓(Bernard Bosanquet, 1848–1923) — 《논리학——지식의 형태학》(Logic, or the Morphology of Knowledge, 1888), 《국가의 철학적 이론》(The Philosophical Theory of the State, 1899)
- 에드워드 케어드(Edward Caird), 존 케어드(John Caird), J. H. 뮤어헤드(J. H. Muirhead), J. M. E. 맥태가트(J. M. E. McTaggart), R. G. 콜링우드(R. G. Collingwood) 등
회원들 사이에서 칸트에 중점을 두는지 헤겔에 중점을 두는지의 차이는 있었으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지녔다.
주요 사상
형이상학
영국 관념론은 실재(reality)가 근본적으로 정신적·합리적인 성격을 지니며, 궁극적으로 포괄적인 전체, 즉 '절대자'(Absolute)를 이룬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개별 사물과 개인은 이 전체 내부의 부분적 표현으로 이해되었으며, 사물 간에는 내적 관계(internal relations)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인식론
경험론이 감각 자료의 축적을 지식의 원천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여, 경험은 항상 개념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사고와 대상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진리는 고립된 명제와 사실 간의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체계 안에서의 정합성(coherence)에 의해 판단된다는 정합론적 진리관을 제시하였다.
윤리학·정치철학
영국 관념론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파악하면서, 자아실현(self-realization)과 공동선(common good)을 윤리적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자유는 단순히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자신의 이성적·사회적 본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적극적 능력(긍정적 자유, positive freedom)으로 이해되었다.
정치사상적으로 그린은 인격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영국 자유당의 이론적 기틀이 되었다. 그 영향을 받아 레너드 홉하우스(L. T. Hobhouse)는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를 제창하였고, 시드니 웹(Sidney Webb)은 페이비언 협회의 이론 형성에 기여하여 영국 노동당의 이론적 토대의 일부가 되었다. 다만 홉하우스의 '신자유주의'는 20세기 후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이 주장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는 별개의, 오히려 반대적 성격의 개념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쇠퇴
20세기 초두, 케임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영국 실재론이 대두하였다. 조지 에드워드 무어(G. E. Moore)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대표적 인물로, 이들은 영국 관념론의 형이상학과 내적 관계론 등을 비판하고 논리적 분석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을 개발하여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실재론과 논리 실증주의의 융성으로 영국 관념론의 영향력은 제1차 세계대전 즈음까지 크게 약화되었다.
영향과 재평가
영국 관념론은 영국 본토뿐 아니라 대영제국 전역과 동아시아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아프리카의 알프레드 호에르눌레, 캐나다의 존 왓슨, 인도의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 중국의 양창지 등이 관념론 형이상학과 정치철학을 자기 사상의 발전에 활용하였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 많은 철학 연구자들이 그린으로부터 인격주의 사상을 수용하였으며, 나카지마 리키조, 다카야마 조규, 니시다 기타로 등이 대표적이다. 쇼와 전쟁 이전에는 가와이 에이지로가 그린으로부터 교양주의와 자유주의를 연구하여 자기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20세기 후반 이후 영국·일본 등지에서 영국 관념론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부활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콜링우드, 그린, 보전켓 등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 문헌
- W. J. Mander, British Idealism: A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 Anthony Quinton, "Absolute Idealism," Proceedings of the British Academy 57 (1971): 303–329
- Peter P. Nicholso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the British Idealists: Selected Studi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 Sandra M. den Otter, British Idealism and Social Explanation: A Study in Late Victorian Thought, Clarendon,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