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염온동(廉溫東, 1898 년 5 월 1 일 ~ 1946 년 1 월 24 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추정(秋汀)이며, 본관은 파주(潘州) 염씨이다. 그는 강원도 김화군(현 철원군) 읍내리 출신으로, 염문우와 손문 사이에서 태어난 네 형제 중 막내다.
생애
염온동은 1910년 금화군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보성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금화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해 3년간 옥고를 받았다. 이후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1921년 4월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한인 독립운동 단체와 교류하며 활동을 이어갔으며, 1923년 제11회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입법 활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에는 안창호·엄항섭 등과 함께 경제후원회를 조직하고, 애국금을 납입하는 등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에 앞장섰다. 이후 상해 청년동맹회 간부, 조선민족혁명당 낙양구 책임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임시정부 군무부 총무과장 및 군사편찬위원회 간사로 임명되어 한국광복군의 군사학 서적 편찬과 군사법 규정 제정 등에 기여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국제 승인 및 후속 처리를 위해 노력했으며, 1946년 1월 중국 중경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가족 관계
- 아버지: 염문우(廉文雨)
- 어머니: 손문(孫文)
- 형제: 염만동, 염연동, 염진동
주요 업적 및 평가
염온동은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의 입법·재정·군사 분야에 걸쳐 다방면으로 기여하였다. 특히 군무부 총무과장으로서 한국광복군의 조직·운용 기반을 마련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그의 활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외부 링크
- 국가보훈처 – 염온동 영보 페이지: https://www.mpva.go.kr/narasarang/month_hero_view.asp?id=362
참고문헌
- 위키백과, “염온동”. https://ko.wikipedia.org/wiki/염온동 (2025년 4월 21일 최종 편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염온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7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