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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4월 참변

정의

연해주 4월 참변은 1920년 4월 4일 밤부터 4월 5일까지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일대에서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과 우수리스크(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 등 한인 거주 지역을 기습 공격하여 대규모 학살과 방화를 자행한 사건이다. '신한촌 참변' 또는 '4월 참사'라고도 불린다.

배경

1918년 일본은 시베리아 출정을 단행하여 연해주 일대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1920년 3월, 러시아 적군(볼셰비키 혁명군)이 일본 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를 공격하자,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 작전을 계획하였다. 당시 연해주의 한인 사회는 일본에 적대적인 러시아 적군에 우호적이었고,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 군대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여 국내 진출을 준비하는 등 항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경과

1920년 4월 4일 밤, 연해주에 주둔 중이던 일본 시베리아 출정군 약 7만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스파스크 등 한인 집단 거주 지역을 기습 습격하였다. 일본군은 가옥을 불태우거나 파괴하고 다수의 한인을 체포·살상하였다. 신한촌에서는 체포된 한인들을 신문사 편집국 건물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단 학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수리스크에서는 70여 명의 한인 독립운동가가 체포되었다.

피해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본군 기록에는 한인 60명 체포라고 되어 있으나, '소련한족사'(김승화 저)에 따르면 300명이 넘는 한인들이 체포되어 학교에 갇힌 채 건물이 불태워져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인과 러시아인을 합쳐 약 5,0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수리스크 교외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240명의 러시아인과 한인 희생자가 기록되어 있다.

주요 희생자

이 사건으로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최재형(최 표트르 세묘노비치, 1858~1920)이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함께 순국한 인물로는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연해주 한인사회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이 사건으로 노인동맹단 등 독립운동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었다.

사후

우수리스크 교외에는 4월 참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4월 5일 러시아 지방정부가 추모제를 거행한다. 2006년에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 추모제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사건 이후 연해주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독립운동의 주무대는 점차 중국 만주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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