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4월 참변은 1920년 4월 초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 제국 육군이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학살 및 파괴 사건이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新韓村)을 중심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여 신한촌 참변 또는 블라디보스토크 4월 참변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와 연해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각종 독립운동 단체의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은 한인 이주민의 중심지이자 이동휘, 박은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모금, 군자 양성, 독립신문 발행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요람이었다. 일본은 러시아 내전(시베리아 출병)을 명분으로 1918년부터 연해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으며, 이 지역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눈엣가시로 여겨 이를 진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사건의 전개: 1920년 4월 4일부터 5일 새벽에 걸쳐 일본군은 러시아 백위군과 연합하여 연해주 각지의 한인 마을과 독립운동 단체를 급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봉쇄하고 무차별적인 학살과 약탈, 방화를 자행했다. 신한촌은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고, 독립운동 관련 시설(신한촌 사무소, 한인 학교, 신한촌 교회 등)과 한인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은 체포되거나 학살당했으며, 심지어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희생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한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재산상의 피해 또한 막심했다. 당시 러시아 당국의 묵인 또는 방관 하에 자행된 이 참변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한인 독립운동 세력 말살 작전의 일환이었다.
결과 및 영향: 연해주 4월 참변으로 인해 연해주 지역의 한인 독립운동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 거점을 만주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는 연해주 한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후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과 함께 연해주 한인 사회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참변은 일제가 해외 한인 독립운동을 얼마나 잔혹하게 탄압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