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군(驪川君)은 조선시대 왕족 종실에게 주어진 군(君) 작위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의 적서자(嫡庶子)나 왕의 친족 가운데 일부에게 군(君) 또는 군(君)의 작위를 내렸는데, 여천군 또한 이에 해당하는 봉작명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여천군(驪川君)에 봉해진 인물은 최소 두 명 이상 존재한다.
1. 여천군 이경(李境, 1683~1730)
이경은 조선 왕족 출신으로, 1683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1689년(숙종 15) 나이 7세에 여천군(驪川君)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경종·영조 대까지 왕족 종실로 지냈다. 1728년(영조 4)에는 친형인 여릉군(驪陵君)과 함께 이인좌의 난(李麟佐의 亂)에 연루되어 전라남도 해남(海南)으로 유배되었고, 1730년 유배지에서 복주(服酒, 사사) 처분되었다. 사후 1864년(고종 1) 7월에 관작이 복권되었다.
2. 여천군 이증(李增, 생몰년 미상)
이증은 효종(孝宗)의 4세손으로, 영조와 8촌간이다. 여천군(驪川君)에 봉해졌으며, 1729년(영조 5) 사은사(謝恩使)로 연경(燕京, 베이징)에 다녀오면서 신역법(新曆法)을 가져왔고, 1737년에는 주청사(奏請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48년(영조 24) 본가의 묘당에서 괴이한 투서(投書)가 발견된 사건에 연루되어 국청(鞫廳)에서 심문을 받았다. 조작된 투서 사건으로 인해 역모 혐의가 제기되었으며, 영조의 비호에도 불구하고 삼사의 탄핵으로 제주(濟州)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고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영조실록』, 『승정원일기』, 『선원계보(璿源系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위키백과 등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