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보통리 고택(驪州 甫通里 古宅)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이다.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유산(당시 중요민속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당시 수량은 1필지 2,588㎡이다.
이 고택은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대대로 거주해 온 창녕 조씨 하산군파의 고택이다.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상량문과 문중 기록, 건축 기법을 근거로 조선 순조 13년(1813)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위키백과 등 일부 자료에서는 1753년(영조 29년) 건립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1999년 안채 지붕 수리 공사 중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건립 시기가 확인되었다는 점은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건립 주체에 대해서도 기록이 다소 상이하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이조판서를 지낸 조윤대와 그의 아들 조봉진, 조용진이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종 때 이조판서가 된 조석우가 지었다고 전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건립 연대와 창건자에 대한 기록이 일부 상이하므로,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학술적 검증이 필요하다.
이 고택은 독립운동과도 연관이 깊은 건축물이다. 독립운동가 조성환과 춘천 의병장 이만응이 이곳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여주문화원 등에서는 이 고택을 '조성환 고택'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배치 형식은 사랑채가 안채를 가로막고 서 있는 'ㅁ'자형을 이룬다. 구체적으로는 'ㄷ'자형 안채 앞에 '一'자형 큰 사랑채가 놓인 형태이다. 이러한 배치는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평가된다. 원래 대문은 바깥행랑채에 있었으나 현재는 바깥행랑채가 헐려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는 사랑채, 작은사랑채, 안채, 곳간채가 'ㅁ'자를 이룬 일곽만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집은 한강이 멀리 내다보이는 터전에 자리 잡은 고대광실(高臺廣室) 기와집이다. 사랑채에는 두벌의 댓돌과 내루(內樓, 사랑채의 한 칸을 다락으로 꾸민 것)가 구조되어 있으며, 문얼굴을 방정하게 하여 크기나 비례에서 법도에 어긋나지 않은 점, 처마 구성에서 흐트러짐이 없는 점 등에서 사대부의 제택(第宅)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평가된다. 주초는 사다리꼴의 화강석이고 기둥은 방주(方柱)이며 굴도리집에 처마는 홑처마이다. 대청의 문얼굴에는 사분합을 달았고, 방의 바깥벽에는 머름을 드리고 분합을 달았으며 그 안에는 '용(用)'자형 무늬의 미닫이를 설치하였다.
이 고택은 훈련된 서울의 경공(京工)이 활동한 범위를 탐색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