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으로,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붙는 상용구이다. 팔리어로는 'evam me suttam', 산스크리트어로는 'evam mayā śrutam(एवं मया श्रुतम्)'이며,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의미이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또는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어원 및 유래
불교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제1차 경전 결집(結集)이 마하가섭(대가섭)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때 부처의 시자(侍子)였던 아난다(아난) 존자가 부처의 가르침을 암송하면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아난다는 부처의 십대 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일컬어졌으며, 그가 암송한 내용은 결집에 모인 500명의 아라한들의 합송(合誦)과 추인을 거쳐 경전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여시아문'은 아난다가 부처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을 자신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의미와 기능
'여시아문'은 경전의 내용이 부처의 직접적인 가르침(불설, 佛說)임을 증명하고, 외도의 성전과 구별하며, 경전 내용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이 수동태(mayā śrutam, '나에 의해 들려졌다')로 표현된 점은, 듣는 자의 의지나 해석이 개입되지 않고 부처가 말한 대로 들린 것을 그대로 전한다는 인도적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육성취(六成就)
불교 경전은 '여시아문'에 이어 일정한 체제를 갖추는데, 이를 육성취라고 한다. 여시아문은 신성취(信成就, '이와 같이'라는 믿음)와 문성취(聞成就, '내가 들었다'는 전달)에 해당하며, 그 뒤에 시성취(時成就, '어느 때'), 주성취(主成就, '부처'), 처성취(處成就, 설법 장소), 중성취(衆成就, 함께한 청중)가 이어진다. 예를 들어 『금강경』은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로 시작한다.
대승 경전에서의 사용
초기불교 경전에서 비롯된 '여시아문'은 부처 열반 후 약 500년이 지난 기원 전후부터 성립한 대승불교 경전들에도 그 전통이 계승되어 사용되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묘법연화경』, 『화엄경』, 『불설무량수경』 등 대표적인 대승 경전들도 모두 '여시아문' 또는 '아문여시'로 시작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통해 대승 경전 역시 부처의 직접적인 가르침임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았다.
주요 주석
초기 경전의 주석 문헌인 『디가 니까야』 범망경 주석서(DN-a, I, 29)에서는 '여시아문'이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소멸시키고 믿음을 일으키기 위한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용수보살의 『대지도론』(T.25, 62하~63상)에서는 "'이와 같이'의 의미는 바로 믿음이다. 불법의 대해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고 해석하여, '여시(如是)'를 믿음(信)의 개념과 연결지었다.
의의
여시아문은 불교 경전의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하는 핵심적인 표현으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 경전의 서두를 장식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승한다는 불교적 전통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