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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여군(女軍)은 여성 군인, 또는 여성으로 조직된 군대를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에서 남성 군인에 비해 적은 비율을 차지하며, 대체로 19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창군되었다.

대한민국 여군의 역사

대한민국 여군의 기원은 6·25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직전인 1949년,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고 이를 지도할 교관 양성을 위해 여자배속장교 제도가 도입되었다. 1949년 6월 30일 부산사범 교사 문일련 등 32명이 최초로 입교하여 예비역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여군의 효시로 평가된다.

6·25전쟁 발발 후, 여자배속장교 훈련대장이었던 김현숙 예비역 중위가 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하여 1950년 9월 1일부로 육군 제2훈련소 예속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되었다. 1950년 9월 4일 입대식이 실시되었으며, 지원 자격은 18세~25세 미혼 여성으로 중학교(당시 6년제)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자였다. 3,000여 명의 지원자 중 491명이 제1기생으로 선발되어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배출되었다. 이들은 정훈대, 첩보대, 전투부대, 예술대 등에 편성되어 활동하였다.

해군 여군은 1950년 8월 31일 해병대에서 시작되었다. 제주도에서 모집된 126명의 여자의용군이 포함되어 교육 수료 후 해군본부와 통제부에 배치되어 간호, 홍보, 예비사무원 업무를 수행했다. 공군은 창군 이전인 1949년 2월 15일 육군항공사령부 예하에 여자항공교육대가 발족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제1기생 15명이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통신·정비·기상·조종 과목 교육을 받았다.

간호장교는 1948년 5월 1일 제1육군병원 창설 후, 면허를 소지한 간호사를 간호장교로 임관시키면서 탄생하였다. 1948년 8월 26일 31명이 소위로 입대하였으며, 이는 한국 최초의 여군이자 여성장교 임관으로 기록된다.

1951년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여군의 대량제대가 실시되었고, 1951년 11월 15일 여자의용군 훈련소가 해체되었다. 이후 육군본부 고급부관실 내에 여군과가 설치되어 잔류 여군의 인사행정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 시점부터 공식적으로 '여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도적 발전

1955년 5월 20일 서울 서빙고에 여군훈련소가 정식 재창설되었다. 1970년에는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여군단이 창설되어 여군 전담 체계가 구축되었다. 1990년에는 여군병과가 해체되고 제병과로 통합되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에 최초로 여생도가 입교하였고, 1998년 육군사관학교, 1999년 해군사관학교가 차례로 여성 생도에게 문호를 개방하였다. 2001년에는 해군에서 최초로 여군이 함정에 배치되었고, 2002년 국군 최초의 여군 장성(양승숙 준장)이 배출되었다. 2010년에는 전투병과(보병)에서 최초의 여군 장성(송명순 준장)이 탄생하였으며, 2019년에는 여군 최초의 소장 진급자가 배출되었다.

현황

대한민국 국군에서 여군은 병(兵)으로 입대할 수 없고 장교·부사관으로만 복무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국군만의 특징이다. 2016년 기준으로 여군 규모는 1만 명을 넘어섰으며, 장교 정원의 7%, 부사관 정원의 4.5%를 차지하였다. 2023년 기준으로 배출된 여군 장성은 모두 육군 출신이며, 최고 진급 계급은 소장으로 중장 이상 계급에 진급한 여군은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

여군의 활동 영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14년 이후 기갑, 포병, 방공 등 이전까지 개방되지 않았던 병과들이 개방되었고, 2024년에는 해군에서 최초로 여군이 잠수함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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