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년~1956년)는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셔(Aberdeenshire) 출신의 여성 판화작가이자 수채화가이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의 풍속을 소재로 다양한 목판화와 수채화 작품을 남겼다.
생애
1887년(또는 1888년 4월 30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관장을 지냈으며, 9남매 중 한 명이었다. 1898년 런던으로 이주하였고, 1903년경 런던에서 미술사와 유럽 화풍을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915년, 일본에 거주하던 언니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Elspet Keith Robertson Scott)과 형부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였고, 이후 무기한 체류하며 일본 각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1919년 3월 28일, 언니와 함께 한국(당시 조선)을 처음 방문하였다. 이 시기는 3·1 운동 직후로, 일제의 식민 통치가 한창이던 때였다. 한국에 매료된 키스는 언니가 일본을 거쳐 영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한국에 남아 그림을 계속 그렸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동대문 인근의 감리교 의료 선교회관(보구여관)에서 지내며 한국인들의 일상과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1919년 가을 도쿄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일본 신판화(新版画) 운동의 출판인 와타나베 쇼자부로(渡邊庄三郞)의 권유로 목판화 제작을 시작하였다. 첫 목판화 작품인 '달빛 아래의 동대문'이 성공을 거둔 이후, 평생 약 120여 점의 작품을 목판화 또는 동판화로 제작하였다.
1921년 9월, 서울에서 서양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1934년에는 서울 미쓰코시 백화점 화랑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2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도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으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로열 컬렉션을 비롯해 보자르 갤러리, 샌프란시스코 박물관,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오리건 대학 박물관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키스는 한국 외에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으나, 특히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약 80여 점으로 추정되며, 이 중 약 30점이 판화로 제작되었다. 그녀는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풍속, 인물, 풍경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였으며, 결혼 풍습, 무당, 서당, 시장 풍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1946년, 언니 엘스펫과 함께 저서 『올드 코리아(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과 함께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인들의 고통을 동정하는 글이 실려 있다. 1928년에는 『동양의 창(Eastern Windows)』을 출간하였다.
키스는 1936년 이후 한국을 다시 방문하지 못하였고, 1956년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평생 미혼으로 지내며 그림에 전념하였다.
작품 세계와 의의
키스의 작품은 일본 우키요에(浮世繪)의 영향을 받은 목판화 기법과 서양 수채화 기법이 결합된 특징을 보인다. 그녀는 한국인의 일상과 풍속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였으며, 특히 20세기 초 한국의 전통 복식, 건축, 생활 도구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신부(Korean Bride)', '평양의 동문', '맷돌을 돌리는 여인들', '운양 김윤식' 등이 있다.
키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seal) 디자인을 세 차례(1934년, 1936년, 1940년) 제작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2006년 전북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사후 첫 단독 전시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는 재미교수이자 키스 작품 수집가인 송영달(宋永達)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