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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우드빌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1437년 ~ 1492년 6월 8일)은 15세기 잉글랜드의 왕비로, 요크 왕가의 국왕 에드워드 4세의 배우자이다. 그녀는 에드워드 5세와 훗날 튜더 왕가의 국왕 헨리 7세의 왕비가 된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왕실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로 기록된다.

출생과 가문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37년 잉글랜드 노샘프턴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리처드 우드빌은 랭커스터 왕가 헨리 4세의 아들인 베드퍼드 공작 존의 시종 무관이자 기사로 평민 신분이었다. 어머니 룩셈부르크의 자퀘타(Jaquetta of Luxembourg)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를 배출한 룩셈부르크 가문의 분가 출신으로, 생 폴 백작가의 딸이었다. 자퀘타는 1433년 17세 때 베드퍼드 공작 존과 결혼했으나 1435년 공작이 사망한 후, 국왕의 승인 없이 리처드 우드빌과 비밀리에 재혼하였다. 이로 인해 초기에는 왕실과 갈등을 빚었으나, 자퀘타의 여동생 이사벨의 시가 쪽 조카인 앙주의 마거릿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6세 왕비가 되면서 궁정에서 신임을 얻었고, 1448년 리처드 우드빌에게 리버스 남작(Rivers) 작위가 내려졌다.

첫 번째 결혼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52년경 랭커스터 왕가의 기사이자 페러스 여남작의 후계자였던 그로비의 존 그레이 경(Sir John Grey of Groby)과 혼인하였다. 이 결혼에서 두 아들——훗날 도싯 후작이 되는 토마스 그레이와 리처드 그레이——을 얻었다. 1461년 제2차 세인트올번스 전투(Second Battle of St Albans)에서 존 그레이 경이 랭커스터 왕가 편에 서서 싸우다 전사하면서 엘리자베스는 미망인이 되었다.

에드워드 4세와의 결혼과 왕비 즉위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와 비밀리에 결혼하였다. 정확한 결혼 날짜와 장소는 기록으로 확정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1464년 5월 1일 우드빌 가문의 노샘프턴셔 영지에서 치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듬해인 1465년 5월 26일 정식 대관식을 거행하고 잉글랜드 왕비로 즉위하였다. 1466년 2월 11일 첫 자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두 부부는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정치적 갈등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왕비 등극은 즉각 잉글랜드 정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왕비가 되기에는 신분이 낮다는 점과 랭커스터 왕가 지지파 출신이었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요크 왕가의 즉위에 결정적 공을 세운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 Earl of Warwick)은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 왕비 샤를로트의 동생인 사부아의 보나(Bona of Savoy)와 혼인 동맹을 추진 중이었던 상황에서 비밀 결혼이 발각되자 크게 반발하였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동생 앤서니 우드빌이 에드워드 4세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정계에서 급부상한 것도 갈등을 심화시켰다.

워릭 백작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자신의 사위인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을 새 왕위 계승자로 지지하는 모의를 꾸몄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랭커스터 왕가의 앙주의 마거릿과 결탁하였다. 1470년 워릭 백작은 잉글랜드로 돌아와 에드워드 4세를 폐위시키고 헨리 6세를 복위시켰다. 이 기간 동안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소(聖所)에 피신하였으며, 1470년 11월 2일 그곳에서 에드워드 4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훗날의 에드워드 5세를 출산하였다.

1471년 바넷 전투(Battle of Barnet)에서 워릭 백작이 전사하고, 같은 해 튜크스베리 전투(Battle of Tewkesbury)에서 랭커스터 왕가의 적통 후계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가 전사하면서 랭커스터 파는 몰락하였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하였다.

에드워드 4세 사후와 말년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폐렴으로 급사하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미망인이 되었다. 장남인 12세의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5세로 즉위하였으나, 대관식에 앞서 동생 요크 공작 리처드와 함께 런던 탑에서 행방불명되었다(이른바 '런던 탑의 왕자들' 사건). 이후 호국경이었던 에드워드 5세의 삼촌 글로스터 공작이 1483년 6월 25일 리처드 3세로 즉위하였다.

리처드 3세의 즉위 이후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그녀는 리처드 3세에 대항하여 튜더 왕가의 헨리 튜더(훗날 헨리 7세)를 지지하는 세력과 협력하였으며, 헨리 7세가 리처드 3세를 보스워스 전투에서 격파하고 즉위한 후, 딸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헨리 7세와 결혼하면서 요크 왕가와 튜더 왕가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92년 6월 8일 런던 버몬지에서 사망하였으며,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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