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알라메인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의 서부 사막 전역에서 이집트 북부의 엘 알라메인(El Alamein)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를 통칭한다.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1942년 7월 1일~7월 21일)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1942년 10월 23일~11월 11일)로 구분되며, 북아프리카 전역의 전세를 연합군 우세로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주요 전투로 평가된다.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
1942년 6월 가잘라 전투에서 패배한 영국군은 이집트 동부로 후퇴하였고, 에르빈 롬멜 원수가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군은 이집트 침공을 감행하였다. 영국 중동군 사령관 클로드 오킨렉 대장은 엘 알라메인 인근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는데, 이 지역은 남쪽으로 카타라 저지대(Qattara Depression)가 위치하여 기갑부대의 우회 기동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다. 1942년 7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추축군의 공세와 영국군의 반격이 교차되었고, 결과적으로 영국군은 추축군의 이집트 추가 진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투는 전술적 교착 상태로 끝났으나 연합군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 이 전투에서 영국 제8군은 약 1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추축군은 약 10,000명의 사상자와 7,000명의 포로를 기록하였다.
알람 엘 할파 전투
제1차 전투 이후 1942년 8월 30일, 롬멜은 마지막 공세를 시도하였으나 버나드 몽고메리 중장이 새로 지휘를 맡은 영국 제8군에게 격퇴당하였다(알람 엘 할파 전투).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제공권과 화력에서 우위를 점하였고, 추축군은 많은 병력과 전차를 손실하였다.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1942년 10월 23일 오후 10시, 몽고메리가 지휘하는 영국 제8군은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개시하였다. 연합군은 약 19만 명의 병력과 1,500대 이상의 전차를 보유한 반면, 추축군은 약 10만 명에 불과하였다. 11월 4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으며, 특히 오스트레일리아군과 뉴질랜드군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1월 2일부터 추축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11월 4일 이탈리아 3개 사단이 궤멸되면서 전황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11월 11일까지 연합군은 추축군을 이집트 국경 너머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결과 및 의의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과달카날 전역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략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연합군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1942년 11월 8일 횃불 작전(Torch)이 개시되면서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은 양면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이집트에서 철수하여 리비아에서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북아프리카 전역은 연합군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몽고메리는 이 전투의 승전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과 달리 결정적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