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에페소 공의회

에페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 라틴어: Concilium Ephesinum)는 서기 431년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오늘날 튀르키예 셀추크 인근)에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소집된 기독교의 제3차 보편 공의회(에큐메니컬 공의회)이다. 에베소 공의회 또는 에페소스 공의회라고도 불린다.

배경 및 소집 목적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격화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키릴루스(치릴로)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며 성모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kos,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을 지지한 반면,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두 개의 독립된 자립존재(휘포스타시스)로 보아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간의 오랜 신학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회 분열 위기에 직면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경과 및 주요 결정

공의회는 431년 6월 22일 에페소스의 테오토코스 성당에서 개막하였다.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안티오키아의 요한(요하네스)과 시리아 주교들이 교통 문제로 지연되자, 먼저 도착한 키릴루스가 에페소의 멤논 주교의 지지를 받아 회의를 주도하였다.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의 교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를 파면하였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에서 해임시켰다. 또한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고 마리아를 '테오토코스'로 부르는 것을 정당한 교리로 인정하였다. 이후 433년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는 합동 신조를 발표하며 일시적으로 화해하였으나, 네스토리우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로 추방되었고 451년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역사적 의의

에페소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정통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중요한 회의이다.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을 따르는 세력은 이후 중동과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어 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성행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아시리아 동방 교회와 인도의 토머스 교회(마라발파) 등으로 계승되고 있다. 또한 공의회는 규범 제8조를 통해 키프로스 교회의 독립권을 비준하였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