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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시

에티엔 드 라 보에시(Étienne de La Boétie, 1530년 11월 1일 ~ 1563년 8월 18일)는 프랑스의 판사, 작가, 시인, 정치철학자이다.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르(Périgord) 지역의 사를라( Sarlat)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오를레앙 대학교(University of Orléans)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553년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듬해인 1554년, 최소 연령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왕실의 특별 임명을 통해 보르도 고등재판소(Parlement of Bordeaux)의 판사로 임용되었다.

그는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몽테뉴는 그의 수필 〈우정에 대하여〉(De l'amitié)에서 라 보에시와의 깊은 우정을 기록하였으며, 라 보에시가 1563년 8월 18일 33세의 나이로 질병(추정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모든 원고와 서적을 상속받았다.

라 보에시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자발적 복종》(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또는 Le Contr'un)이다. 이 글은 그가 16세에서 22세 사이(학자에 따라 추정 연령이 다름)에 집필한 것으로, 군주제와 폭정 일반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 논지는 "폭군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민이 그에게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며, 국민이 복종을 거부하기만 하면 폭정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후대의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및 비폭력 저항(nonviolent resistance) 사상의 선구적 형태로 평가된다.

이 저작은 라 보에시 사후인 1576년에야 출판되었으며, 이후 위그노(Huguenot) 운동에 의해 채택되어 종교 전쟁 시기에 중요한 이념적 지침으로 활용되었다. 20세기에는 구스타프 란다우어(Gustav Landauer), 시몬 베유(Simone Weil) 등 아나키스트 사상가들과, 비폭력 투쟁 이론가 진 샤프(Gene Sharp)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그는 크세노폰(Xenophon)의 《가사관리》(La Mesnagerie)와 플루타르코스(Plutarch)의 저작을 번역하였으며, 29편의 소네트를 포함한 시를 남겼다. 또한 피에르 드 롱사르(Pierre de Ronsard) 등이 주도한 플레야드(Pléiade) 시인 그룹과도 교류한 인문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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