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레 아르코 이시도로 부가티(Ettore Arco Isidoro Bugatti, 1881년 9월 15일 ~ 1947년 8월 21일)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자동차 설계자이자 제조업자로, 프랑스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Bugatti)의 창립자이다. 그는 1946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하여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 되었다.
부가티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는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 및 보석 설계자였고, 남동생 렘브란트 부가티는 동물 조각가로 유명했다. 이러한 예술적 가정 배경은 이후 부가티의 자동차 설계 철학, 즉 기술적 우수성과 미적 완성도를 결합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부가티는 1898년 밀라노의 프리네티 & 스투키(Prinetti & Stucchi)와 함께 첫 자동차인 "부가티 타입 1"을 제작했다. 이후 구리넬리 백작의 재정 지원으로 타입 2를 개발하여 1901년 밀라노 무역 박람회에서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로렌-디트리히(Lorraine-Dietrich) 자동차 공장에서 설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도이츠(Deutz)사의 생산 이사로 일하며 여러 프로토타입을 설계했고, 1913년에는 푸조(Peugeot)를 위한 소형차 타입 19 "베베"를 설계하기도 했다.
1909년, 부가티는 당시 독일 영토였던 알자스(Alsace) 지역의 몰샤임(Molsheim)에서 자신의 자동차 회사인 오토모빌 E. 부가티(Automobiles E. Bugatti)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당대 가장 빠르고 사치스러우며 기술적으로 진보된 도로용 자동차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초기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에서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었다. 부가티의 대표 모델로는 타입 22, 타입 35, 타입 41("라 루아얄" 또는 "골든 부가티") 등이 꼽힌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부가티는 항공기 엔진을 설계했으며, 전쟁 사이 기간에는 동력 철도차량인 '오토레일 부가티'와 항공기 모델 100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인근 병원의 교수였던 친구를 위해 설계한 수술 기구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가티의 장남 장 부가티(Jean Bugatti)는 1939년 8월 11일, 몰샤임 공장 근처에서 부가티 타입 57 경주차를 테스트하던 중 사고로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회사의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몰샤임 공장이 파괴되면서 회사는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부가티는 1947년 8월 21일,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몰샤임 근처 도를리샤임(Dorlisheim) 시립 묘지의 부가티 가족 묘역에 안치되었다.
부가티는 2000년 미국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부가티 브랜드는 이후 여러 차례 소유권이 변경되었으며, 현재는 독일 폭스바겐(Volkswagen) 그룹의 계열사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