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조 공화국(일본어: 蝦夷共和国)은 1869년 1월 27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 일본 홋카이도(당시 명칭: 에조) 지역에 존재했던 단명 정권이다. 일본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성립된 공화국으로, 하코다테 전쟁의 종결과 함께 소멸하였다.
배경 및 성립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하고 메이지 신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구 막부 세력이 반기를 들었다. 막부 해군 부총재였던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는 구 막부 신하들을 보호하고 북방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1868년 8월, 해군 기함 가이요마루(開陽丸) 등 8척의 군함을 이끌고 에도를 탈출하였다. 도중에 아이즈 전쟁에서 패배한 전습대(伝習隊), 신선조(新選組), 창의대(彰義隊) 등의 잔존 세력이 합류하였고, 이들은 마쓰마에 번을 침공하여 홋카이도 일대를 장악하였다.
정치 체제
이들은 하코다테(函館)에 정청을 두고 정권을 운영하였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에조 공화국'이라고 칭하지는 않았으나, 주일 영국 공사관 서기관 애덤스(Adams)가 하코다테 정청을 '공화국'으로 보고하면서 이 명칭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68년 12월, 일본 최초의 선거를 통해 정부 조직이 구성되었으나, 투표권은 에노모토를 따라온 군인들에게만 주어져 사실상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 총 856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156표를 얻은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총재(대통령)로 선출되었고, 마쓰다이라 다로(松平太郎)가 부총재가 되었다.
국제적 인정
영국과 프랑스는 에조 공화국에 대해 '사실상의 정권(Authorities De Facto)'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는 교전 단체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하코다테 지역의 실효 지배를 인정하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이후 서양 각국이 메이지 정부를 일본의 유일한 정통 정권으로 공인하면서 에조 공화국은 국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소멸
메이지 신정부는 에조 공화국을 용인하지 않고 즉시 진압군을 파견하였다. 1868년 12월 핵심 전력인 군함 가이요마루가 풍랑으로 좌초·침몰하였고,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현지 주민들의 지지도 잃어갔다. 1869년 5월 11일 최후의 결전에서 주력군이 궤멸당한 끝에, 5월 17일(음력 기준, 양력 6월 27일) 에노모토와 각료들이 최후 본진인 고료카쿠(五稜郭) 성의 문을 열고 신정부군에 항복함으로써 약 5개월간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이후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반역죄로 투옥되었으나 1872년 석방된 후 메이지 정부에서 각종 요직을 역임하고 자작(子爵)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다만 그는 이후 에조 공화국에 대한 언급을 극히 꺼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고료카쿠는 하코다테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