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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메돈 전투

에우리메돈 전투(Battle of Eurymedon)는 기원전 466년(또는 469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에 소아시아 팜필리아 지역의 에우리메돈강(현재의 쾨프뤼차이강) 하구에서 수상과 육상에서 동시에 벌어진 전투이다.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사이에 벌어졌으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일부로 분류된다. 전투는 하루 만에 결판이 났으며, 결과는 델로스 동맹의 승리였다.

배경

제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리스는 페르시아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기원전 478년 스파르타가 비잔티움을 공략했고, 기원전 475년에는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이 에이온을 함락시켰다. 에이온을 탈취한 후 당시 지휘관이었던 아테네의 장군 키몬은 더 큰 과업을 위해 피레아스에서 보급을 완료하고 200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항했다. 여러 동맹 도시 국가에서 원군이 보태져 함대는 300척으로 늘어났다. 키몬은 카리아와 리키아의 그리스 도시들을 설득하거나 무력으로 아군으로 끌어들인 뒤, 페르시아 군이 주둔하고 있던 에우리메돈강으로 진군했다.

에우리메돈강의 페르시아 군은 수군과 육군 양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페렌다티스가 이끄는 육군은 페르시아만에 자리를 잡았고,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서자 티트라우스테스가 이끄는 해군은 페니키아, 키프로스, 카리아인으로 구성된 340척의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전군 총사령관은 아리오만데스였다.

전투 경과

전투의 경과는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키몬 전'과 디오도로스의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두 기록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 군은 키프로스에서 원군 80척과 합류하기 위해 에우리메돈강 근처에 정박하고 있었다. 키몬은 적에게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결말을 보기 위해 전투를 개시했다. 델로스 동맹의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를 공격하여 물리쳤고, 살아남은 페르시아 군은 육군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키몬은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 육군을 공격했고,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휴도로스에 80척의 페르시아 함대가 정박해 있다는 소식을 접한 키몬은 최고 속도로 진격해 아군의 패배를 모르는 함대를 괴멸시켰다.

디오도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첫 전투는 에우리메돈강이 아니라 키프로스에서 벌어졌다. 적이 키프로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키몬은 250척의 함대를 이끌고 가서 격전 끝에 적선을 대부분 파괴하고 100여 척을 승무원과 함께 노획했다. 패주한 페르시아 군은 육지로 도망갔다. 키몬은 그 승리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에우리메돈 강변에서 숙영하고 있던 페르시아 육군에게로 향했다. 그는 키프로스에서 노획한 적의 함선에 페르시아 풍으로 변장시킨 병사들을 승선시켜 적진으로 보냈고, 페르시아 군은 그들을 아군으로 착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날 밤 델로스 동맹이 야습을 감행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렸다. 전투 중 페르시아 군의 지휘관 페렌다티스는 잡혀서 죽었다.

두 기록 중 플루타르코스가 전투 시점에 더 가까운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보다 신뢰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기록은 투키디데스의 짧은 기록과도 부합한다.

결과 및 영향

이 전투의 승리로 키몬은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기원전 449년에 체결된 칼리아스 화약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전투 이후 지중해의 제해권은 페르시아에서 그리스의 손으로 넘어갔고, 아테네는 그리스의 패권국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만 기원전 454년 이집트의 반란을 돕기 위해 파견된 아테네 군이 전멸하면서 페르시아는 지중해의 해상 세력으로 재부상하게 되었다.

주요 사료

이 전투에 대한 주요 사료로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I. 94-95, 98, 100), 디오도로스의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XI. 60-61),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키몬 전'(12-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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