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토니오스(그리스어: Ἐριχθόνιος, Erichthoniu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초기 군주이다. 고대 아테네 전승에서 아테네 왕조의 가장 신성한 기원 인물 중 하나로 전해지며,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의 신성한 개입으로 탄생한 존재로 묘사된다.
어원
에리크토니오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언어학자 베이크스(Beekes)에 따르면 선(先)그리스어 형태인 *Erektyeu-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후대에 민간 어원으로 ἐρέχθω(떨다, 흔들다)와 연결짓는 해석이 생겨났으며, 그 외에도 ἔριον(양털) + χθών(땅), 또는 ἔρις(투쟁, 불화) + χθών(땅)으로 분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탄생 신화
에리크토니오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에서 독특한 창조 서사 중 하나이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estus)가 아테나에게 욕정을 품고 그녀를 추격하였고, 아테나는 이를 거부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헤파이스토스의 정액이 아테나의 허벅지에 묻었고, 아테나는 역겨움에 양털 조각으로 그것을 닦아 땅에 던졌다. 그 정액을 받아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임신하여 에리크토니오스가 태어났다. 이로 인해 그는 땅에서 태어난 자생적(autochthonous) 존재로 간주된다.
아테나는 이 아이를 가엾게 여겨 몰래 키우기로 결심하고, 아기 에리크토니오스를 바구니에 넣어 아테네의 왕 케크롭스(Cecrops)의 세 딸(판드로소스, 아글라우로스, 헤르세)에게 맡기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두 자매가 바구니를 열었고, 그 안에는 뱀이 감긴 아기, 혹은 반인반사(半人半蛇)의 형상을 한 존재가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자매들은 공포에 질려 정신이 나가거나 절벽에서 투신하여 죽음을 맞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통치와 업적
성장한 에리크토니오스는 크라나오스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암픽티온(Amphictyon)을 몰아내고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그는 물의 님페 프락시테아(Praxithea)와 결혼하여 아들 판디온 1세(Pandion I)를 두었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판아테나이아(Panathenaia) 축제를 창시하고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나의 목상(木像)을 세운 일이 꼽힌다. 또한 파리안 연대기(Parian Chronicle)에 따르면, 그는 백성들에게 말을 길들여 전차를 끌게 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한편 전승에 의하면 에리크토니오스는 두 발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4두 전차(quadriga)를 발명하였으며, 그의 뛰어난 전차 경기 실력에 감탄한 제우스가 그를 하늘로 올려 마차부자리(Auriga)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상징과 유산
뱀은 에리크토니오스의 상징이며,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조각상이 방패 뒤편에 숨긴 뱀으로 그를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신성한 건축물인 에렉테이온(Erechtheum)은 에리크토니오스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초기 그리스 문헌에서는 에리크토니오스와 그의 손자 에렉테우스(Erechtheus)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으나, 기원전 4세기 고전 시대에 이르러 두 인물은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정립되었다.
고전 문헌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집』(Bibliotheca),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여행기』 등 여러 고전 문헌에서 에리크토니오스의 탄생과 관련 일화가 상세히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