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본명 조제프 에르네스트 르낭, 1823–1892)은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문헌학자, 종교학자이다. 그는 동양학자이자 셈족 언어학자로서 셈족 언어와 문명, 초기 기독교의 기원, 민족주의와 민족 정체성에 관한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르낭은 1823년 2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트레기에(Tréguier)에서 어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톨릭 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파리 생튈피스 신학교(Saint-Sulpice Seminary)에서 철학과 히브리어, 시리아어 등을 공부했으나, 역사 비판적 연구와 철학적 회의를 거치면서 결국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학문적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다.
1847년 철학 교수 자격시험(agrégation)에 합격했고, 이후 셈족 언어학 연구로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862년에는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히브리어·칼데아어·시리아어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883년부터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총장(administrator)을 역임했다. 1892년 10월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작과 사상
《예수의 생애》(Vie de Jésus, 1863)
르낭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저서로, 《기독교 기원사》(Histoire des origines du christianisme) 시리즈의 첫 권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르낭은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취급하여 신적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 기술했으며, 성경에 대한 비판적 고증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가톨릭 교회와 보수적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시리즈는 총 7권으로 1863년부터 1881년까지 출판되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Qu'est-ce qu'une nation?, 1882)
르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강연 중 하나로, 민족(nation)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시 독일 학자들(피히테 등)이 민족을 언어나 인종 등 객관적 기준으로 정의한 것과 달리, 르낭은 민족을 공동으로 위대한 일을 해낸 과거와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로 정의했다. 그의 유명한 표현인 "매일의 국민투표(plébiscite de tous les jours)"라는 개념은 이후 민족주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이론은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기타 저작
르낭은 《이스라엘의 역사》(Histoire du peuple d'Israël), 자서전적 회고록 《유년과 청년의 추억》(Souvenirs d'Enfance et de Jeunesse, 1883), 《지식의 미래》(L'Avenir de la Science), 《프랑스의 지적·도덕적 개혁》(La Réforme Intellectuelle et Morale, 1871) 등을 저술했다. 또한 1860년대에는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페니키아 고고학 탐사대를 이끌었다.
논쟁과 비판
르낭의 사상은 인종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는 셈족이 아리아 인종보다 열등하다는 인종주의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며,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카자르족의 후손이라는 이른바 '카자르 이론'(Khazar theory)을 제기한 최초의 학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인종관은 단순하지 않아, 말년에는 순수한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인종 기반의 민족 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식민지 확장 정책을 지지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후 '공화주의적 인종주의'(Republican racism)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르낭의 사상은 니체, 무솔리니, 베네딕트 앤더슨 등 다양한 인물과 학파에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아이메 세제르 등으로부터 서구 휴머니즘의 위선을 드러내는 사례로 비판받았다.
영향과 유산
르낭은 생전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존경받았으며, 그의 사후에는 서구 문화의 진보적 정신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민족 개념에 대한 그의 이론은 20세기 민족주의 연구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며, 특히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6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프랑스 장갑순양함이 건조되었으며, 미국 버지니아 주의 르낭(Renan) 지역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