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스페인어: Eduardo Frei Montalva, 1911년 1월 11일 ~ 1982년 1월 22일)는 칠레의 정치인이자 변호사로, 1964년부터 1970년까지 칠레의 제29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중도좌파 기독교민주당(Partido Demócrata Cristiano de Chile) 소속으로, "자유 속의 혁명(Revolución en Libertad)"이라는 슬로건 아래 광범위한 사회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생애 및 초기 경력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는 1911년 1월 11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칠레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깊이 관여했으며, 1930년대 후반에 사회 기독교 정당인 팔랑헤 나시오날(Falange Nacional)을 공동 창립하는 데 참여했다. 이 정당은 이후 기독교민주당으로 발전하여 칠레 정치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 그는 상원의원과 국토부 장관을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195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1964-1970)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레이 몬탈바는 "자유 속의 혁명"이라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정부는 빈곤 퇴치, 사회 불평등 해소, 그리고 경제 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진보적인 정책들을 추진했다. 주요 정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토지 개혁: 농업 부문의 구조적 변화를 위해 대규모 농장을 분할하여 농민들에게 재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칠레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구리 광산 '칠레화': 칠레의 주요 수출 품목인 구리 광산을 외국 기업에서 부분적으로 국유화하는 '칠레화(Chileanization)' 정책을 추진하여 국가 통제를 강화했다.
- 교육 및 사회 개혁: 교육 시스템 확장, 주택 건설, 보건 서비스 개선 등 광범위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책은 보수 세력과 급진 좌파 모두로부터 저항에 부딪혔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 후 및 사망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에도 그는 칠레 정치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 이후, 그는 초기에는 군부의 질서 회복을 지지하는 듯했으나, 곧 군사 독재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82년 1월 22일, 프레이 몬탈바는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당시 군사 정권의 개입 의혹으로 논란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그의 사망이 독극물 암살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었다.
유산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는 20세기 칠레 정치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자유 속의 혁명" 개혁 정책은 칠레 현대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칠레의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추구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아들인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타글레 또한 칠레 대통령(1994-2000)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