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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전투

업 전투(鄴戰鬪)는 중국 후한 말기인 건안 9년(204년)에 조조(曹操)가 원상(袁尙)의 근거지인 업(鄴)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관도대전 이후 원소(袁紹)가 사망하고 그 아들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한 틈을 타 조조가 화북 지역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위(魏)나라 건국의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배경

원소 사후, 그의 후계를 둘러싸고 장남 원담(袁譚)과 차남 원상(袁尙)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원담은 조조에게 항복하고 혼인동맹을 맺어 원담의 딸이 조조의 20번째 아들인 조정(曹整)과 혼인하였다(203년 10월). 조조는 원담의 항복을 받아들여 원담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기주(冀州)로 진군하였다.

전투 경과

건안 9년(204년) 1월, 조조는 황하를 건너 귀환한 후 기수(淇水)의 물길을 바꾸어 군량 수송로를 확보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원상은 원담에게 화해를 요청하였으나 원담이 이를 거절하자, 심배(審配)에게 업을 지키게 하고 직접 원담을 공격하였다. 이에 조조는 군사를 진군시켜 다시 기주를 공격하였다(204년 2월).

조조는 업을 포위하고 땅굴과 토산을 만들며 공격하였으나 업성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조조는 조홍(曹洪)에게 업 공략을 계속하게 하고 직접 주변 지역을 공략하여 윤해(尹楷)와 저곡(沮鵠)을 차례로 격파하였다.同年 5월, 조조는 장수(漳水)의 물길을 파서 업성을 수몰시켰고, 성 안의 아사자는 절반 이상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원상은 심배의 위급함을 전해 듣고 업을 구원하기 위해 귀환하였다. 이부(李孚)를 보내 조조군의 눈을 속이고 성 안에 들어가 상황을 알린 후, 봉화로 서로 연락을 취하며 협공을 시도하였다. 원상은 조조의 포위를 뚫기 위해 야습을 감행하였고, 심배도 성 북쪽으로 군사를 내보내 호응하였으나 조조의 반격에 모두 크게 패배하였다. 원상은 진림(陳琳)과 음기(陰夔)를 사절로 보내 항복을 청하였으나 조조는 이를 거절하였다.

원상은 밤중에 포위를 뚫고 기산(祁山)으로 달아나 재차 결전을 준비하였으나, 부장 마연(馬延)과 장의(張顗)가 싸움 시작 직전 조조에게 투항하고 원상을 공격하였다. 이에 원상은 모든 군사를 잃고 대장군의 인수와 절월(節鉞)까지 버려둔 채 단기(單騎)로 달아났다(204년 7월).

조조는 원상군의 투항자들로 하여금 원상의 의복과 기물 등을 업성에 보이게 하여 성 안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심배는 끝까지 성을 사수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고, 포위망을 시찰하던 조조를 쇠뇌로 기습하여 맞추기도 하였으나 죽이지는 못하였다. 결국 조카 심영(審榮)이 배신하여 성문을 열었고, 업은 함락되었으며 심배는 처형당하였다(204년 8월).

결과 및 영향

업 함락 후 병주목(幷州牧) 고간(高幹)은 원상에게 상황이 불리해지자 자립할 뜻을 품었으나, 이미 업이 조조에게 함락되고 성 내부에 심어둔 내응자들도 모두 주살되자 태도를 바꾸어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이 전투를 통해 조조는 원소 세력의 근거지이자 당시 화북의 중심지였던 업을 장악하였고, 이는 이후 조조가 화북을 통일하고 위나라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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