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명(嚴柱明, 1896년 11월 19일 ~ 1976년 2월 6일)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까지 활동한 군인이자 교육인이다. 본관은 영월이며, 아명(兒名)은 규성(圭成)·귀성(貴星)이고, 아호(雅號)는 소석(小石), 자(字)는 규성(圭成)이다. 일본식 이름은 도쿠야마 요시토요(德山義豊)이다.
출생과 가계
1896년(고종 33년) 경성부 서소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고위 무관이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엄준원(嚴俊源)이며, 어머니는 인동 장씨이다. 고모는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로, 엄주명은 순헌황귀비의 조카이다. 또한 영친왕 이은(李垠)과는 외사촌 관계였으며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절친한 친구였다. 누이 엄채덕은 일제강점기 관료이자 조선 자치론자였던 민원식(閔元植)과 결혼하였다.
일본 유학과 군인 생활
1907년 영친왕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 순헌황귀비의 뜻에 따라 비공식 동행하여, 1908년부터 1910년까지 도쿄 도리이사카(鳥居坂)의 영친왕 관저에서 함께 생활하며 소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수학하였다. 1911년 1월 가쿠슈인(學習院) 중등학과 1학년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 중퇴하고 육군중앙유년학교로 편입하였다. 이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30기로 졸업하고 일본 제국 육군 장교로 임관하여 보병 중위까지 진급하였다.
진명학원 경영과 일제강점기 활동
1923년 진명(進明) 재단의 간사직에 취임하였고, 1938년 아버지 엄준원이 사망하자 그해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장 겸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당시 일본군 중위로 소집되어 중국 전선에 출정하기도 하였으나, 부친상과 재단 업무를 고려하여 1938년 3월 중 귀국 및 예편하였다. 1940년 창씨개명 당시 도쿠야마 요시토요(德山義豊)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광복 후 진명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였고, 한국 전쟁 중에는 육군 대령으로 경기도 계엄민사부장, 경기지구 병사구사령관, 위수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경남지구·서울지구·충북지구 병사구 사령관을 거쳐 1956년 6월 22일 임시 준장으로 특진과 동시에 예편하였다.
생애 후반
예편 후 1956년 충청남도 당진군에 진명염전(進明鹽田)을 설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재향군인회 부회장, 대한상업은행 취체역 상무, 연합증권금융 전무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 시기 영친왕 이은의 귀국 문제와 관련하여 김을한과 함께 귀국특사로 임명되어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976년 2월 6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자택에서 협심증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평가와 논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과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