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구(魚有龜, 1675년~1740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경종의 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친정아버지이다. 본관은 함종(咸從)이며, 자는 성칙(聖則), 호는 긍재(兢齋),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릉참봉이 되었고, 170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사서(司書)·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713년에는 홍문록(弘文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714년 이후 수찬(修撰)·교리(校理)·응교(應敎)·집의(執義)·사간 등 주로 삼사의 언관직을 맡았다.
1718년 수원부사를 거쳐 병조참지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훗날 선의왕후)으로 간택되었으며, 그 해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가 되었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에 봉해졌고, 이듬해 어영대장이 되어 훈국(訓局) 관장을 겸하였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가 발생하여 노론 4대신(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이 파직되자, 이들의 무고를 밝히고 김일경(金一鏡) 등의 상소를 물리쳤다. 1722년 영돈녕부사에 오르고 강화유수가 되었다. 유생 황욱(黃昱)·김수구(金壽龜) 등이 윤선거(尹宣擧)·윤증(尹拯) 부자의 복관을 상소하자, 스승을 배반한 죄를 논하며 반대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후 신임사화 때의 내통 여부를 심문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영조는 국구(國舅)로서 예우하였다. 1728년(영조 4)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1735년 훈련대장, 이듬해 수어사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저서로는 『긍재편록(兢齋編錄)』과 『농암사단칠정변(農巖四端七情辨)』이 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익헌(翼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