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득강 (魚得江, 1347년 ~ 1419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함종(咸從)이며, 호는 죽계(竹溪)이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고 벼슬을 거부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두문동 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생애
어득강은 1347년(충목왕 복위 3년)에 태어났다. 1374년(공민왕 2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직한림원(直翰林院), 좌랑(佐郎)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강직한 성품으로 국정에 참여하였으나, 이성계(李成桂) 등이 위화도 회군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을 개창하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는 어득강에게 여러 차례 벼슬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는 충절을 지키며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후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인 함종(현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특히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자연 속에서 시문(詩文)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1419년(세종 1년)에 향년 73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어득강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충효 사상과 절의(節義)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는 새로운 왕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정치적,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삶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후대에는 충신과 절의의 상징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저서
어득강의 저서로는 『죽계집(竹溪集)』이 전해지고 있다. 이 문집에는 그의 시문과 학문적 견해 등이 담겨 있어 당시의 사회상과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기념 및 평가
어득강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인물로서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다. 그는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72인의 충신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은 그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정신은 조선시대 내내 충의의 표상으로 존경받았다.
참고 문헌
- 『고려사(高麗史)』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죽계집(竹溪集)』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이 보기
- 두문동 칠십이현
- 길재
- 이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