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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 (촉한)

양홍(楊洪, ? ~ 228년)은 중국 후한 말기에서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이다. 자(字)는 계휴(季休)이며, 익주(益州) 건위군(犍爲郡) 무양현(武陽縣) 출신이다.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곽왕상장양비전(霍王向張楊費傳)」에 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초기 경력

양홍은 원래 익주목 유장(劉璋) 휘하에서 관리로 근무하였다. 유비(劉備)가 익주를 평정하자 이엄(李嚴)과 함께 유비에게 귀순하였다. 유비의 촉 평정 이후, 건위태수로 임명된 이엄의 추천을 받아 공조(功曹)에 임명되었다. 이엄이 군의 치소(治所)를 이전하려 하자 양홍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였고, 이엄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사임하려 하였다. 이후 이엄은 양홍을 주(州)에 추천하여 촉부종사(蜀部從事)로 삼고자 하였다.

한중 공방전과 촉군태수 임명

유비가 한중(漢中)을 두고 조조(曹操)와 대치하던 시기, 긴급 징병 문서가 내려지자 제갈량(諸葛亮)은 양홍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양홍은 "한중은 익주의 인후(咽喉)로서, 만약 한중을 잃으면 촉군(蜀郡)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는 각 가문의 화근이니,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수송을 담당해야 합니다. 병사 파견에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 당시 촉군태수 법정(法正)이 유비를 수행하여 북쪽으로 떠나 있었으므로, 제갈량은 표(表)를 올려 양홍에게 촉군태수를 겸임하게 하였다. 양홍은 각종 사무를 원활히 처리하여 결국 정식으로 촉군태수에 임명되었고, 이후 익주치중종사(益州治中從事)로 전임되었다.

황원의 난 진압

유비가 칭제한 후 오(吳)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영안(永安)에 머물던 중, 한가태수(漢嘉太守) 황원(黃元)이 반란을 일으켜 임공성(臨邛城)을 불태웠다. 당시 제갈량은 유비의 병문안을 위해 동쪽으로 가 있었고, 성도(成都)의 병력은 미약하였다. 양홍은 즉시 태자 유선(劉禪)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친위병을 파견하였으며, 장군 진홀(陳曶)과 정작(鄭綽)에게 황원 토벌을 명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황원이 성도를 점령하지 못하면 월수(越巂)를 거쳐 남중(南中)으로 도주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양홍은 황원이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 오나라로 망명하려 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하였다. 진홀과 정작은 남안협(南安峽) 입구를 차단하여 과연 황원을 사로잡았다.

후기 경력과 평가

건흥(建興) 원년(223년), 양홍은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받고 촉군태수와 충절장군(忠節將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월기교위(越騎校尉)로 승진하면서도 촉군태수를 겸임하였다. 제갈량이 북벌(北伐)을 위해 한중에 주둔할 당시, 양홍은 승상부 장사(長史) 장예(張裔), 참군(參軍) 장완(蔣琬)과 함께 후방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였다.

양홍은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충성스럽고 청렴하며 성실하고 명석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공적 업무를 마치 자신의 집안일처럼 걱정하였고, 계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회(楊戲)의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에서는 그를 두고 "월기(越騎)는 매우 충성스러우며, 뜻을 세우고 스스로 신중하였다. 안팎의 직무를 맡아 공적인 일을 염두에 두고 사사로움을 잊었다"라고 평하였다.

양홍은 228년에 사망하였다. 처음에는 이엄의 부하였으나, 이엄이 건위태수로 나가기도 전에 먼저 촉군태수로 승진할 정도로 빠르게 출세하였다. 그가 발탁한 문하서좌(門下書佐) 하지(何祗) 역시 재능을 인정받아 몇 년 후 광한태수(廣漢太守)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양홍은 여전히 촉군태수로 재직 중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서쪽 지역 사람들은 제갈량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능력에 감복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등장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제65회에서 유비의 입촉 후 확보한 인재 중 한 명으로 처음 언급된다. 제80회에서는 태부(太傅) 허정(許靖) 등과 함께 유비에게 황제 즉위를 권하는 신하로 등장하며, 제91회에서는 제갈량이 출사표(出師表)를 올린 후 두미(杜微)와 함께 상서(尙書)로 임명되는 장면이 마지막 등장이다. 연의에서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않은 조연급 인물로 그려진다.

참고 문헌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41 촉서(蜀書) 「곽왕상장양비전(霍王向張楊費傳)」
  • 양회(楊戲),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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