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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함왕성지

양평 함왕성지(楊平 咸王城址)는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7번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터이다. 1990년 9월 6일 경기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5월 9일 문화재 명칭이 '양평군 함왕성지'에서 '양평 함왕성지'로 변경되었다.

명칭과 이칭

함왕성지는 '함공성(咸公城)', '함왕성(咸王城)', '양근성(楊根城)', '함씨대왕성(咸氏大王城)' 등으로도 불린다. '함왕'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세거한 양근 함씨(楊根 咸氏)와 관련된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위치와 규모

용문산 줄기 남서쪽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이다. 산마루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로,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바위가 있는 곳은 별도로 성을 쌓지 않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성곽의 둘레는 29,058척(약 8,805m)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북벽과 남벽 일부만 남아 길이 약 700m, 높이 약 1.6m 정도가 보존되어 있다. 1999년 수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및 시굴조사 결과 성내에서 문지 1개소, 치성 1개소, 추정 건물지 3동, 장대지 2개소, 우물지, 수구지 2기가 확인되었다.

축성 방식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화강암 자연석을 이용하여 단과 열을 맞추지 않고 막쌓기에 가깝게 축조하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들여쌓기 방식으로 쌓아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암반이 노출된 곳은 성벽을 쌓지 않거나 암반을 기저로 활용하여 그 위에 성벽을 올렸다.

역사적 배경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역사 기록에 이 성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특히 1253년 고종 40년의 제4차 침입 및 1291년 충렬왕 17년의 합단(哈丹)의 침입) 당시 지역 주민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저항하였으나, 방호별감 윤춘(尹椿)이 항복하면서 함락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출토 유물과 축성법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후기에 민간 보호용으로 축조된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 추정된다.

전설

성 아래에는 '함씨혈(咸氏穴)' 또는 '함공혈(咸公穴)'이라 불리는 바위굴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신령스러운 바위를 뚫고 금빛 서광 속에서 함왕 주악(咸王 周鍔)이 탄생하였으며,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고 부근을 정복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은 양근 함씨의 시조와 관련된 설화로 전승되고 있다.

현황

북동쪽의 건물터로 보이는 넓은 터에는 주춧돌로 이용된 편평한 돌과 고려~조선시대의 기와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서문 안쪽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동쪽 건물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한강 건너 백병산이, 가까이는 양평읍과 옥천면이 한눈에 들어와 지형적으로 한강을 중심으로 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무너지거나 토사에 덮여 있으며, 북벽과 서쪽의 성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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