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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찬

양유찬(梁裕燦, You Chan Yang, 1897년~1975년 10월 20일)은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외교관이다. 제2대 주미합중국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주미대사)를 역임하였다.

생애 개요

  • 출생: 1897년,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 출생.
  • 학력: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1916년 하와이 맥킨리고등학교(McKinley High School)를 마치고, 하와이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보스턴 대학교 의학부를 1923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의사 활동: 하와이로 돌아와 병원을 개업하였으며, 중국인 의사 2명을 고용할 정도로 큰 병원을 경영하며 명성과 재산을 쌓았다. 사회사업으로 한인대학구락부를 만들고 호놀룰루 YMCA 이사, 호놀룰루 한인기독교재단 회장 등을 맡으며 재미동포의 단결과 친목에 힘썼다.

주미대사 활동 (1951~1960)

1951년, 초대 주미대사였던 장면이 이승만과 갈등을 빚자, 이승만이 과거 자신의 제자였던 양유찬을 2대 주미대사로 임명하였다. 양유찬은 처음에는 외교 경험이 없고 번창하던 병원 사업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사했으나, 이승만의 설득으로 수락하였다.

  • 한국전쟁 휴전 반대 외교: 1953년 4월, 현 상태에서 휴전이 이루어질 경우 한국군이 유엔군사령부에서 이탈하겠다는 내용의 비망록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등 이승만의 휴전 반대 입장을 대변하였다.
  • 한일회담: 1953년까지 한일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일본과의 교섭에 참여하였다. 1960년에는 한일 간 억류자 상호석방 합의 등에 관여하였으며, 대일 외교에서 한국인 노동자 보상, 재일한교 재산 반출, 국보 반환, 선박 반환 등 7가지 선결 조건을 제시하였다.
  • 제네바 정치회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 서독 방문: 1957년 6월, 친선사절로 서독을 방문하여 콘라트 아데나워 수상과 회담하고 조만간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
  • 충주비료공장: 1950년대 외자도입으로 건설된 충주비료공장은 양유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 대마도 영유권 주장: 1951년 7월, 미국 국무부에서 존 포스터 덜레스를 만나 이승만 정부의 5개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는데, 여기에는 "대마도, 파랑도, 독도가 러일전쟁 중 일본이 점령하기 전에 한국 영토였으므로, 일본은 그 세 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임과 이후

1960년 4·19 혁명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과도 국무원은 4월 29일 이를 수리하였다. 그의 외교 활동은 외무본부의 체계를 무시한 경무대(경무대, 즉 대통령실) 직통 외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1965년 9월, 특명전권순환대사(순회대사)에 임용되어 유엔대표부에 소속되었고, 1972년까지 각국 순방 외교 활동에 주력하였다. 1972년 외무부 대기대사를 지냈다.

1975년 10월 20일,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저서

  • 《Our Common Task》(1953년)
  • 《The Aspirations of Korea》(1954년)
  • 《Korea Against Communism》(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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