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왕(陽原王)은 고구려의 제24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545년부터 559년까지이다. 이름은 평성(平成)이며, 중국 사서에는 성(成)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 또는 양강왕(陽崗王)이라고도 불린다. 안원왕(安原王)의 맏아들로, 533년 1월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545년 3월 선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양원왕의 즉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안원왕에게는 정부인(正夫人), 중부인(中夫人), 소부인(小夫人) 세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정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중부인의 아들인 평성(양원왕)을 지지하는 추군(麤群) 세력과 소부인의 아들을 지지하는 세군(細群) 세력이 궁문에서 무력 충돌을 벌였고, 추군이 승리하여 세군 측 2,000여 명이 학살된 후 양원왕이 즉위하였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양원왕이 533년에 이미 태자로 책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일본서기》의 8세 즉위 기록과는 연령상 차이가 있다.
양원왕의 치세는 고구려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로 평가된다. 대내적으로는 즉위 과정에서의 귀족 세력 간 갈등이 지속되었고, 학계에서는 이 시기에 귀족연립정권이 성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557년 10월에는 환도성(丸都城)의 간주리(干朱理)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북쪽에서 돌궐(突厥)이 551년에 신성(新城)과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하였으나, 장군 고흘(高紇)이 1만 병력을 이끌고 돌궐군 1,000여 명을 전사시키며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 틈을 노려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이 한강 유역을 공격하여, 하류 6성은 백제, 상류 10성은 신라에게 빼앗겼다. 이로써 광개토대왕 이래 100여 년간 유지되던 고구려의 한강 유역 지배가 종료되었다. 양원왕은 신라의 진흥왕과 밀약을 맺어 추가 피해를 막고자 하였다.
548년에는 백제의 독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구원으로 실패하였고, 550년에는 백제가 도살성을 함락시키자 백제의 금현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가 고구려의 두 성을 빼앗았다. 552년에는 장안성(長安城)을 축조하였고, 554년에는 백제의 웅천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서는 동위(東魏)와 북제(北齊)에 조공을 지속하였다. 550년에는 북제로부터 '사지절 시중 표기대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使持節 侍中 驃騎大將軍 領護東夷校尉 遼東郡開國公 高句麗王)'에 책봉되었다.
양원왕은 559년 3월에 사망하였으며, 왕위는 아들인 평원왕(平原王)이 계승하였다. 그의 능묘는 진파리 1호분으로 추정된다. 《동국통감》은 양원왕에 대해 "무략(武略)이 굳세지 못하여 나라의 형편이 날로 위축되었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