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왕(梁王)은 중국 역사상 양나라(梁國)를 봉토로 받은 제후왕의 칭호이다. '양(梁)'은 지명으로, 시대에 따라 그 영역이 달라졌다. 전한(前漢) 시기의 양나라는 허난성(河南省) 동부, 카이펑시(開封市)와 상추시(商丘市)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으며, 원나라 시기의 양나라는 윈난성(雲南省) 일대에 봉해졌다.
전한 시기의 양왕
전한에서는 원래 양군(梁郡)이라는 행정 구역이 없었고, 진나라의 탕군(碭郡)이 있었으며, 양나라는 이 탕군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초대 양왕은 전한의 개국공신인 팽월(彭越)로, 기원전 202년에 양 땅에 분봉되어 양왕이 되었다. 초대 양왕 시절에는 수도가 후대의 양군이 아닌, 후대의 제음군(濟陰郡)에 속한 정도현(定陶縣)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의 대표적인 양왕으로는 문제(文帝)의 아들이자 경제(景帝)의 친동생인 효왕(孝王) 유무(劉武)가 있다. 그는 오초칠국의 난(吳楚七國之亂)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비옥한 지역 40여 성을 봉지로 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자손들은 전한이 멸망할 때까지 양왕 작위를 세습하였다.
전한의 양왕들은 다음과 같다:
- 팽월(彭越, 기원전 202~196)
- 유회(劉恢, 기원전 196~181)
- 여산(呂産, 기원전 181~180)
- 유태(劉太, 기원전 180)
- 회왕 유읍(劉揖, 기원전 178~169)
- 효왕 유무(劉武, 기원전 168~144)
- 공왕 유매(劉買, 기원전 144~137)
- 평왕 유양(劉襄, 기원전 137~97)
- 정왕 유무상(劉毋傷, 기원전 97~86)
- 경왕 유정국(劉定國, 기원전 86~46)
- 이왕 유수(劉遂, 기원전 46~40)
- 강왕 유가(劉嘉, 기원전 40~25)
- 유립(劉立, 기원전 25~기원후 3)
- 유음(劉音, 5~9)
이후 시대의 양왕
신(新)나라에서는 양나라가 폐지되었다. 후한(後漢) 시기에는 명제(明帝)의 아들인 유창(劉暢)이 절왕(節王)으로 봉해지면서 양왕 작위가 부활하였다. 이후 위진남북조,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조에서 양왕 작위가 다양한 황족과 공신에게 수여되었다.
원나라 시기에는 윈난성 일대가 양왕의 봉지로 주어졌으며, 마지막 양왕이었던 바자르오르미(把匝剌瓦爾密)는 명나라가 윈난을 평정한 1382년에 이르러 패망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홍희제(洪熙帝)의 아들인 주첨기(朱瞻垍)가 양왕에 봉해졌다(1424~1441).
한편 '양왕'이라는 표기는 같은 한자 '양(梁)'이 아닌 '양(凉, 또는 涼)'을 쓰는 경우도 있어, 오호십육국시대의 전량(前凉)·북량(北凉) 등 양주(凉州) 일대 정권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인다. 또한 '양왕(襄王)'처럼 한자가 다른 별개의 인물이나 칭호와 혼동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