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만(1982년 8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배구 선수이다. 출생지는 전라남도 광주시이며, 포지션은 라이트였다.
양성만은 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하였다. 당시 또래 학생보다 키가 크고 왼손을 사용하는 특성 때문에 배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명지대학교에 진학하여 팀의 주공으로 활약하였다. 대학 졸업 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지명을 받지 못하였고, 고향으로 내려가 해남군청 일용직으로 채용되어 배구 동호회 활동을 하였다. 이후 전남체육회 소속으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여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이를 계기로 한국전력 배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한국전력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양성만은 정평호와 함께 팀의 쌍포를 이루었으며, "좌평호, 우성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공격력을 갖추었다. 그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서브 에이스를 기록할 만큼 강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로 알려졌다. 2006년 3월 11일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경기에서 백어택 5개, 서브 에이스 3개, 블로킹 3개를 기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2006년 양산 프로배구에서는 남자부 공격 종합과 C속공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의 활약 덕분에 한국전력 선수로는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며, 2007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한국전력 배구단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은 1990년대 이후 신영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8~2009 시즌이 끝난 후 양성만은 팀 동료 황설민과 함께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였고, 2011년에 제대하였다. 제대 후 은퇴하고 한국전력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나, 2012년 2월 V-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 프로배구 V-리그에서 발생한 승부조작 사건으로, 수사 과정에서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관한 브로커들의 진술이 나오면서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한편, 동명이인으로 우석대학교 교양대학의 양성만 명예교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나, 이는 위의 배구 선수와는 별개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