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梁緖, ? ~ ?)는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와 촉(蜀)나라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위나라 천수군(天水郡)의 관리로 재직하다가, 제갈량의 제1차 북벌 당시 촉나라로 귀순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228년(건흥 6년), 양서는 위나라 천수군에서 공조(功曹)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옹주자사(雍州刺史) 곽회(郭淮)가 서현(西縣)에서 기현(冀縣)의 낙문(洛門)에 이르기까지 천수군을 순찰하였다. 천수태수(天水太守) 마준(馬遵)이 중랑(中郞) 강유(姜維), 공조 양서, 주부(主簿) 윤상(尹賞), 주기(主記) 양건(梁虔) 등을 거느리고 곽회를 수행하였다. 이때 마침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기산(祁山)으로 침입하였고, 여러 현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곽회는 급히 상규현(上邽縣)으로 달려갔다.
마준은 천수군의 치소인 기현이 서쪽에 치우쳐 있고 그 주민들도 난을 반길까 염려하여 곽회를 따라가려 하였다. 강유가 응당 기현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준은 강유 등도 딴마음을 가졌을 것이라 의심하여 밤중에 몰래 상규로 빠져나갔다. 강유 등이 뒤늦게 마준을 쫓아갔으나 성문이 이미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이후 양서는 강유 등과 함께 촉나라에 투항하였다. 촉나라에서 관직은 대홍려(大鴻臚)에 이르렀으며, 촉한이 망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사서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양서가 양건의 형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제92회에 천수군의 공조로 첫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모략으로 강유가 촉에 투항한 뒤, 강유가 천수성에 내분을 유발하고자 평소 윤상·양서와 친했던 사실을 이용해 밀서를 성안으로 날려보내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를 습득한 마준이 대도독 하후무(夏侯楙)에게 그 둘을 처단해야 한다고 진언하자, 윤상과 양서는 이를 알고 먼저 성문을 열어 촉군을 맞아들였다. 이후 양서는 상규성을 수비하던 동생 양건도 설득해 항복시켰으며, 그 공으로 천수태수에 임명되었다고 서술된다.
주요 사료로는 《삼국지》 권44 촉서 제14의 강유전(姜維傳)과,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이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서 인용된 내용이 참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