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洋服)은 동양권에서 서양식 의복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착용하는 서양식 정장을 가리킨다. 주요 구성으로는 셔츠, 재킷, 바지, 넥타이 등을 포함하며, 이들로 이루어진 한 벌을 슈트(suit)라고 부른다. 셔츠와 블라우스, 스커트, 바지, 스웨터, 원피스, 투피스, 재킷, 점퍼, 코트 등이 모두 양복의 범주에 포함된다.
어원: '양복'이라는 용어는 한자 '양(洋)'과 '복(服)'으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양'은 '바다' 혹은 '서양(西洋)'을 뜻하며, '복'은 '옷'을 뜻한다. 즉 '서양에서 온 옷'이라는 의미로, 동양에서 서양식 의복을 지칭할 때 사용된 명칭이다. 한국에서는 원래 기존의 전통 의복을 '의관(衣冠)'이라고 불렀으며, 개화기 이후 서양식 의복이 도입되면서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양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도입과 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양복은 1884년 갑신의제개혁에서 처음으로 복제 개혁이 시도되면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당시에는 시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후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서양 문명의 수용과 함께 복제 개혁이 단행되었다. 1895년 단발령 시행과 함께 양복 착용이 제도적으로 허용되었고, 1896년에는 육군복장규칙이 제정되어 당시 사용하던 군복을 폐지하고 서양식 군복을 도입하였다. 1900년에는 문관복장규칙이 발표되어 문관의 복식이 양복화되었다. 이때 도입된 서양식 문관복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며, 일본은 다시 영국의 대례복을 모방한 것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양복 착용 사례로는 1881년 신사유람단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서광범(1859~1897)이 요코하마의 양복점에서 양복을 구입하여 착용한 것이 기록상 첫 사례로 언급되나, 이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정확한 확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남성 양복 착용은 관복(官服)을 시작으로 궁중과 정부 요인, 상류층에서 점차 확대되었고, 1902년에는 한인에 의해 처음으로 한흥양복점이 개설되었다.
대중화 과정: 양복은 개화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주로 관복 또는 상류층의 의복으로 사용되었으며, 가정에서는 여전히 한복을 입는 이중 복식 생활이 지속되었다. 1920년대에는 양복 착용이 크게 확산되었고, 1930년대에는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양복이 급격히 보급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전시 체제 아래 국민복 착용이 강요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양복 착용은 더욱 보편화되었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남성 양복의 전성시대로 일컬어질 만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농촌 지역까지 보급되었다. 여성복의 경우에도 개화기 시절 도입된 양장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고, 한복은 의례복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였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양복은 주로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 예를 들어 비즈니스 회의, 결혼식, 공식 행사 등에서 착용되는 대표적인 의복 형태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