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가(兩班家)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존재한 최상급 지배 신분층인 양반(兩班)의 가문 또는 집안을 의미하는 말이다. '양반(兩班)'과 '가(家, 집안)'가 결합된 합성어로,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관료층을 가리키던 원래 의미가 확대되어 그 가족과 후손, 가문 전체를 포괄하게 된 개념이다.
양반의 개념은 본래 고려시대 관제상에서 문관(동반)과 무관(서반)을 함께 이르는 용어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 양반 관료 체제가 정비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현직 관료뿐만 아니라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자격을 가진 가문과 그 가족, 사림(士林)이라 불린 학자 계층까지 포함하는 신분층으로 변화하였다. 이에 따라 양반가(兩班家)는 이러한 지배 신분에 속한 집안을 지칭하게 되었다.
양반가는 조선 사회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렸다.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과거(科擧)나 음서(蔭敍)를 통해 고위 관직을 독점하는 한편, 군역(軍役)과 부역(賦役)을 면제받았다. 경제적으로는 지주층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관료층으로서 생산 활동에 직접 종사하지 않고 학문과 유교적 소양을 닦는 데 힘썼다. 양반가 내에서는 유교적 예법과 가훈이 중시되었고,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일 신분 내 혼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양반가의 생활 문화는 주택 구조, 음식, 의복,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조선 사회의 규범적 모델로 기능하였다. 주거 공간은 사랑채(남성 공간)와 안채(여성 공간)가 분리된 구조가 일반적이었으며, 양반가의 음식 문화는 조리서(예: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규합총서』 등)를 통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오늘날 한국 전통 음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적 기반이 약화된 하위 양반층이 늘어나면서 양반가의 실질적 위상은 변화를 겪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이후 양반이라는 신분 개념은 법적으로 사라졌으나, 가문의식과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서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잔존하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양반가 출신'이라는 표현은 주로 역사적 배경이나 가문의 전통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