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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릉 (고려)

양릉(陽陵)은 고려 제20대 신종(神宗, 1144~1204, 재위 1197~1204)의 능이다. 현재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고남리에 위치하며, 북한 보존급유적 5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종은 인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명종의 동생으로, 최충헌의 난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재위 7년째인 1204년(신종 7) 정월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해 2월 개성 남쪽 용수산 칠보봉(七寶峰) 일대에 장사지내졌으며 능호를 양릉이라 하였다. 이후 1206년(희종 2) 희종이 양릉을 알현하고 능 옆에 효신사(孝信寺)를 세웠으나, 현재 그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능역은 약 1,000㎡ 규모로 산기슭 경사면을 이용한 장방형의 3층단 구조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퇴락이 심하여 현재는 층단을 구분하기 어렵고, 봉분 앞에는 문석인 1쌍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인 1662년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의 조사 당시 이미 능의 형태만 남아 있었고 석물은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도굴을 당하기도 하였다.

1978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양릉을 발굴 조사하였다. 널방의 크기는 남북 길이 367㎝, 동서 너비 295㎝, 높이 277㎝이며, 천장에는 직경 약 123㎝의 천구원을 그리고 그 안에 북극삼성과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자리 벽화를 그렸다. 별은 붉은 색으로 0.5~0.9㎝ 크기로 그려졌으며 총 158개의 별이 확인되었다.

발굴 당시 고려자기(상감청자국화문 분합뚜껑, 모란문완, 화형접시, 백자접시 등), 도금한 청동제 자물쇠, 백동거울, 금동방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널방에서 신종의 대리석 시책(諡冊)이 발견되어 능주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는 고려 왕릉 가운데 인종의 장릉에서 도굴되어 수습된 시책과 함께 두 번째로 출토된 사례로 평가된다.

양릉은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해 고려 왕릉의 능제와 내부 구조를 알 수 있고, 능주가 확인된 왕릉으로서 고려 후기 무덤 연구의 중요한 기준 자료로 평가된다. 천장 벽화와 출토 유물은 고려시대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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