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다 강당 사건(安田講堂事件)은 1969년 1월 18일부터 1월 19일까지 일본 도쿄대학 혼고 캠퍼스의 야스다 강당에서 발생한 학생 점거 농성 및 경찰 진압 사건이다.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東大安田講堂攻防戦)이라고도 불리며,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이어진 도쿄대 투쟁(東大闘争)의 최대 격전이자 종결점으로 평가된다.
배경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고도 경제 성장과 함께 전국 대학에서 수업료 인상 반대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원분쟁이 확산되었다. 신좌파 성격의 전학공투회의(전공투)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은 대학 내 바리케이드 봉쇄 등 강경 수단을 동원하였고, 도쿄도내에서만 55개 대학이 바리케이드 봉쇄에 들어갈 정도로 상황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다.
도쿄대학에서는 1968년 1월 29일 의학부 학생들이 기존의 인턴 제도를 대체하는 등록의 제도에 반발하여 무기한 스트라이크에 돌입하면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대학 측이 시위 관련 학생 17명을 제명 처분하자 갈등이 격화되었고, 1968년 3월 28일 의학부 학생들이 야스다 강당에서 예정된 졸업식을 실력 저지하였다. 6월 15일 의학부 학생들이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자 오코치 가즈오 총장의 요청으로 경찰 기동대 1,200명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퇴거시켰다. 그러나 이 조치는 학생들의 반발만 키웠고, 7월 2일 신좌익계 학생 250명이 야스다 강당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하면서 도쿄대학 전학공투회의가 결성되었다. 이후 교양학부, 법학부 등 전 학부로 파업이 확산되었고, 11월에는 오코치 총장 이하 전 학부장이 사퇴하였다. 가토 이치로 교수가 총장 대행으로 취임하였으나, 점거를 지속하는 전공투 학생과의 의견 조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1969년 1월 16일 경시청에 기동대 투입을 정식 요청하였다.
경과
1969년 1월 18일 오전 7시, 경시청 경비부는 8개 기동대 약 8,500명을 동원하여 의학부 종합중앙관과 의학부 도서관의 바리케이드 철거를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투석과 화염병 등으로 저항하였으나 기동대는 각 학부 시설의 봉쇄를 해제하고 야스다 강당을 포위하였다. 오후 1시경 야스다 강당 본격 진압이 시작되었으나, 강당 내 2,00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창문을 깨고 화염병을 투척하고, 책상과 의자로 입구를 막아 불을 지르고 옥상에서 벽돌과 콘크리트 더미를 던지는 등 격렬히 저항하였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 기동대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오후 5시 40분경 작전 중지를 명령받았다.
다음 날인 1월 19일 오전 6시 30분, 기동대는 경찰 헬기와 살수차의 지원을 받으며 진압을 재개하였다. 오후 3시 50분 3층 대강당을 제압하였고, 오후 5시 46분 옥상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학생 90명을 검거함으로써 봉쇄 해제가 완료되었다.
피해 및 결과
이틀간의 공방전으로 기동대 측에서 710명(중상 31명), 학생 측에서 71명(중상 4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총 631명(또는 457명)의 학생이 체포되었다. 사건 직후 문부성은 1969년도 도쿄대학 입시 중지를 발표하였고, 이로 인해 도쿄대학에는 69학번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야스다 강당은 이후 23년간 폐쇄되었다가 1988년부터 1994년에 걸친 개수 공사를 거쳐 1994년부터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의의
야스다 강당 사건은 일본 전후 학생운동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 학생운동은 더욱 과격화되어 무장 투쟁 노선을 추구하는 적군파(日本赤軍)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나, 동시에 대중의 지지를 잃으면서 학생운동 전반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