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일본어: 大和)는 일본 제국 해군이 건조한 전함으로, 야마토급 전함의 1번함이다. '전함 야마토'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건조된 전함 중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건조 배경
야마토는 1930년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이, 함선 수에서 우세한 미국과 영국에 질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제3차 해군 군비 보충 계획에 따라 건조가 결정되었으며,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義)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제원
야마토의 기준 배수량은 69,100톤, 만재 배수량은 72,809톤에 달했다. 전장(길이) 263m, 최대폭 38.9m, 흘수 10.4m였다. 증기터빈 4기 4축 추진 방식으로 153,553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최대 속력은 27.46노트였다. 항속거리는 16노트 기준 7,200해리였고, 연료 탑재량은 6,300톤이었다. 승조원은 준공 당시 약 2,500명, 최종 시점에는 약 3,332명이었다.
무장
주포로는 45구경 460mm 3연장 포탑 3기(총 9문)를 탑재하였으며, 이는 당대 전함 중 가장 큰 구경의 함포였다. 부포로 60구경 155mm 3연장 포탑 4기(12문), 고각포로 40구경 127mm 연장포 6기(12문), 25mm 3연장 기관총 8기(24문), 13mm 연장 기관총 2기(4문)를 갖추었다. 이후 전쟁 기간 중 개장을 통해 대공 화력이 대폭 강화되어, 155mm 부포는 2기(6문)로 줄이고 127mm 고각포는 12기(24문), 25mm 기관총은 3연장 44기(132문)까지 늘어났다.
장갑
현측 장갑 410mm, 갑판 장갑 200~230mm, 주포방순(포탑 전면) 650mm, 함교 500mm로 중무장하여 당대 최고 수준의 방어력을 보유하였다.
건조 및 운용 연혁
야마토는 1937년 11월 4일 해군 구레 공창에서 기공되어, 1940년 8월 8일 진수하였고, 1941년 12월 16일 취역하였다. 취역 직후 연합함대 기함으로 지정되었으나, 동형함인 무사시가 취역한 1942년 8월 이후 기함 역할을 넘겼다.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미드웨이 해전, 마리아나 해전, 레이테만 전투 등에 출격하였으나, 전함 대決전(함대 결전)을 상정한 설계와 달리 항공모함 중심의 해전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자매함 무사시는 1944년 레이테만 전투에서 미군 항공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
최후
1945년 초 미군이 오키나와에 근접하자, 일본 해군은 야마토를 오키나와에 파견하여 460mm 주포를 지상 포대로 활용하는 '천일호작전(天一号作戦)'을 결정하였다. 1945년 4월 6일, 편도분의 연료만을 적재한 야마토는 경순양함 야하기와 구축함 8척을 이끌고 출격하였다.
다음 날인 4월 7일, 규슈 남서쪽 약 200km 해상에서 미 항공모함 베닝턴 및 호넷에서 출격한 전투기 132대, 급강하 폭격기 50기, 뇌격기 98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다수의 폭탄과 어뢰가 명중하여 선체가 심각하게 기울었고, 오후 2시 10분경 주포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선체가 두 동강 나 침몰하였다. 함대 사령관 이토 세이이치 중장과 함장 아리가 고사쿠 대좌를 포함한 약 3,000명의 승조원 중 269명만이 구조되었다.
잔해 발견
1982년 규슈 남서쪽 290km 해역 수심 340m 지점에서 야마토로 추정되는 잔해가 발견되었고, 1984년 추가 조사를 통해 해당 잔해가 야마토임이 확인되었다. 선체는 두 동강이 난 상태로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
역사적 의의
야마토는 거함거포주의의 결정체이자 일본 제국 해군의 기술력과 군사적 야망을 상징하는 전함이었다. 그러나 항공 전력의 발달로 전함 중심의 해전이 종말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그 막대한 건조 비용과 자원 투입 대비 실질적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허무하게 침몰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내에서는 '비극의 군함'으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