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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 타쿠

야마사키 타쿠(山崎拓, 1936년 12월 11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 의원을 12선 역임한 인물이다. 일본어 발음은 '야마사키 다쿠'로 표기하기도 한다.

생애 초기

야마사키 타쿠는 1936년 일본 관동주(關東州)의 다롄(大連)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야마사키 스스무는 만철(南滿洲鐵道) 조사부원으로 근무했으며, 훗날 사가미여자대학 학장을 지냈다. 그의 이름 '拓'자는 외할아버지가 탄광 개발에 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개척(開拓)의 의미를 담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가족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쪽 눈을 다쳤으며, 와세다 대학교 상학부를 졸업한 뒤 타이어 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에서 5년간 근무했다.

정치 경력

1967년 후쿠오카현의회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며,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당시 자민당 간사장)의 발탁을 받아 1972년 중의원 선거에서 첫 당선되었다. 이후 방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84~1985년 내각관방부장관, 1989년 방위청 장관, 1991~1992년 건설대신을 역임했다.

1990년대에는 가토 고이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함께 'YKK' 파벌을 형성하여 자민당 내 개혁 세력으로 활동했다. 1998년 자신의 파벌인 근미래정치연구회(山崎파)를 창설했다. 1999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오부치 게이조, 가토에 이어 3위에 그쳤다. 2000년에는 가토와 함께 모리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가토의 난)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에 취임한 이후 자민당 간사장에 임명되었고, 2003년에는 자민당 부총재에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중의원 선거에서 여성 스캔들에 휘말려 낙선했다. 2005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의원직을 되찾았으나, 2009년 총선에서 낙선하며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대북(對北) 외교 활동

야마사키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외교를 중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중국을 방문해 북한 고위층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며, 2007년 평양을 직접 방문해 북핵 문제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시도했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활동은 정부의 대북 외교 루트 일원화 방침과 배치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논란

1997년 정치 자금 스캔들에 연루되었으며, 2003년에는 자신의 전 내연녀였다고 주장하는 여성 야마다 가나코가 폭로 기자회견을 열어 스캔들이 확대되었다. 야마사키는 이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으나 일부 재판에서 폭로 내용이 사실로 인정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자민당 공천 후보가 아닌 입헌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사실이 문제가 되어 당원 자격 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저서

2016년 YKK 활동을 회고한 『YKK 비록』을 출판했다.

야마사키 타쿠는 1936년생으로, 2024년 기준 88세의 고령이다. 일본 국내외에서 정치적 생애와 논란에 대해 폭넓게 보도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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