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니촌(山国村)은 일본 교토부(京都府) 기타쿠와다군(北桑田郡)에 있던 촌(村)이다. 현재는 교토시(京都市) 우쿄구(右京区)에 편입되어 게이호쿠(京北) 지구의 일부로 남아 있다.
개요
| 항목 | 내용 |
|---|---|
| 읽기 | やまぐにむら (Yamaguni-mura) |
| 소속 | 교토부 기타쿠와다군 |
| 성립 |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 |
| 폐지 | 1955년 3월 1일 (합병 → 게이호쿠정) |
| 최종 소멸 | 2005년 4월 1일 (게이호쿠정 → 교토시 우쿄구 편입) |
| 인구 | 2,648명 (1950년 국세조사) |
| 면적 | 약 217.68 km² (게이호쿠정 전체 기준) |
역사
-
헤이안 시대 — 794년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헤이안 천도 당시, 이 지역은 산국소(山国荘, やまぐにのしょう)로서 황실 직할의 금어료지(禁裏御料地)로 지정되었다. 헤이안쿄 대내리(大内裏) 조영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는 어소마(御杣) 즉 황실 벌채림이었다. 이때 화청마려(和気清麻呂)가 제주(祭主)가 되어 산국신사(山國神社)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
중세 — 이후에도 대상제(大嘗祭)의 유기전(悠紀殿)·수기전(主基殿) 조영용 목재를 공급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수리직(修理職)이 관할하는 황실 영지로 존속했다.
-
에도 시대 — 에도 막부의 직할령(천령)이 되었다.
-
메이지 시대 —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기타쿠와다군 야마구니촌이 발족.
-
쇼와 시대 — 1955년 3월 1일, 주산정(周山町)·우쓰촌(宇津村)·구로다촌(黒田村)·호소노촌(細野村)·야마구니촌(山国村)·유게촌(弓削村)이 합병하여 게이호쿠정(京北町)이 성립. 이로써 야마구니촌은 소멸.
-
헤이세이 시대 — 2005년 4월 1일, 게이호쿠정 전역이 교토시 우쿄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름.
산국대(山国隊) — 유서 깊은 농병대
야마구니 지역은 보신전쟁(戊辰戦争, 1868~1869) 당시, 지역 농민 83명이 결성한 산국대(山国隊)로 유명하다. 이들은 막부 말기 왕정복고(王政復古)의 호령을 받고 관군(官軍) 측에 가담하여, 이나바 돗토리번(因幡鳥取藩)에 소속되어 도호쿠 지방(仙台城)까지 원정했다. 1869년 2월 18일 산국신사에 개선했다.
이 전통은 오늘날 교토 3대 축제 중 하나인 시대제(時代祭)에서 "유신근왕산국대(維新勤皇山國隊)" 열의 선두로 이어지고 있다.
산국신사(山國神社)
- 소재지: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게이호쿠 토리이초(京北鳥居町)
- 제신: 오오나무치노미코토(大己貴命) =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国主命)
- 격식: 《엔기시키 신명장(延喜式神名帳)》(927년)에 등재된 식내사(式内社)
- 창건: 호키 연간(770~780년) / 헤이안 천도(794년) 때 화청마려가 봉사
- 특징: 1016년 정1위(正一位)를 받고 황실 기원소(祈願所)로 지정. 에도 시대에는 족리의문(足利義満)이 재건.
현재의 모습
야마구니촌의 옛 영역은 현재 교토시 우쿄구의 다음 정(町)들에 해당한다:
- 게이호쿠 이도정(京北井戸町)
- 게이호쿠 오노정(京北大野町)
- 게이호쿠 오시오정(京北小塩町)
- 게이호쿠 시모정(京北下町)
- 게이호쿠 쓰지정(京北辻町)
- 게이호쿠 토오정(京北塔町)
- 게이호쿠 토리이정(京北鳥居町)
- 게이호쿠 나카에정(京北中江町)
- 게이호쿠 하츠카와정(京北初川町)
- 게이호쿠 히가에정(京北比賀江町)
이 일대는 기타야마 스기(北山杉)로 유명한 임업 지대이며, 교토의 중요한 목재 공급지로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