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색슨법(Anglo-Saxon Law)은 6세기부터 1066년 노르만 정복까지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시행된 법체계를 가리키는 역사적 개념이다. 이는 게르만법(Germanic law)의 한 형태로, 게르만계의 앵글족과 색슨족이 브리튼 섬에 정착하면서 성립한 법 제도이다.
개요와 특징
앵글로색슨법은 기본적으로 불문 관습법인 '포크라이(folk-right)'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동시에 왕이 위탄(witan, 국왕 자문회의)의 조언을 받아 제정한 성문 법전도 포함하였다. 각 왕국은 고유한 관습법을 지녔으며, 켄트 왕국과 웨식스 왕국이 특히 중요한 법제정의 중심지였다. 속인주의(屬人主義) 입장을 취했으며, 라틴어로 기록된 대륙의 살리카법(Salic Law)과 달리 앵글로색슨어(고대 영어)로 기록된 것이 특징이다.
주요 법전
켄트 국왕 에셀버트(Æthelberht)는 약 602년경 잉글랜드 최초의 성문 법전을 제정하였으며, 이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률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전의 첫 일곱 조항은 교회에 대한 배상에 관한 내용으로, 기독교 수용 이후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다. 이후 켄트에서는 흘로테레와 에드릭의 법(673~685년경), 위트레드의 법(695년)이 제정되었다. 웨식스에서는 이네(Ine)의 법전(688~694년경)이 편찬되었으며, 알프레드 대왕은 890년경 126장으로 구성된 법전(둠 북, Doom Book)을 제정하였다. 이 법전의 서문에 따르면 알프레드는 성경과 참회록, 그리고 이전의 법전들을 연구한 뒤 이를 작성하였다. 10세기에는 에드워드 장로왕, 애설스턴, 에드먼드, 에드가, 애설레드 2세 등의 국왕들이 법전을 반포하였다. 크누트 대왕(재위 1016~1035년)의 법전은 앵글로색슨 시대의 마지막 법전으로, 이전 법률들을 종합한 성격을 지닌다. 노르만 정복 이후에는 이 법전들이 '에드워드 참회왕의 법(leges Edwardi Confessoris)'이라는 이름으로 재편성되어 마그나 카르타(1215년) 성립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체계
후기 앵글로색슨 시대에는 체계적인 법원 제도가 발달하였다. 셔(shire) 법원은 연 두 차례, 헌드레드(hundred) 법원은 매월, 자치시(borough) 법원은 연 세 차례 개최되었다. 헌드레드는 대부분의 민사·형사 사건을 관할한 반면, 셔 법원은 중대 범죄와 왕실 소관 사건을 담당하였다. 각 헌드레드는 '프리보르(friborh)'라는 자치적 치안 유지 제도를 통해 스스로 치안을 관리하였으며, 범죄 발생 시 '휴 앤드 크라이(hue and cry)'라는 추적 제도가 운영되었다. 왕은 판사로서 위탄의 입회 아래 사건을 심리하기도 하였으며, 특정 범죄(왕의 보호 위반, 가택 침입 폭행, 주요 도로에서의 폭행 등)는 왕의 배타적 관할로 분류되었다.
재판 절차와 증거
재판은 고소인의 고발로 시작되었으며, 피고는 선서로 무죄를 증명하는 방식, 즉 공동선서(compurgation)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다. 피고는 이웃의 신원 보증인(oath-helpers)을 확보해야 했으며, 사회적 지위와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필요한 선서의 수가 달랐다. 선서로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 피고는 신의 심판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화형 또는 수형(水刑) 방식의 신판(神判, ordeal)을 받을 수 있었다. 중대 범죄(살인, 주군에 대한 배신, 방화, 가택 침입, 공공절도)는 사형 및 재산 몰수로 처벌되었다.
배상 제도와 사회 계층
앵글로색슨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배상금 체계이다.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가족은 복수 대신 '베레길드(weregild, 인명 보상금)'를 받을 수 있었다. 베레길드의 액수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는데, 평민(ceorl)은 200실링, 귀족(thegn)은 1200실링이었다. 신체 상해의 경우 상처 부위에 따라 배상액이 정해졌다. 노예는 베레길드가 없었으며, 살해 시 구입 가격만 배상되었다. 봉건제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로서, 앵글로색슨법은 토지법에서도 북랜드(bookland, 왕실 헌장에 의한 토지)와 론랜드(loanland, 대여지), 포클랜드(folkland, 관습적 소유지)로 구분되는 체계를 지녔다.
역사적 의의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정은 종말을 맞았으나, 앵글로색슨법의 제도와 관념은 이후 영국 보통법(common law)의 기초가 되었다. 학계에서는 앵글로색슨법을 스칸디나비아법 및 대륙의 '야만인 법전(leges barbarorum)'과 함께 게르만법의 구성 요소로 분류한다.
관련 참고 자료
앵글로색슨법에 대한 주요 학술 자료로는 펠릭스 리버만(Felix Liebermann)의 《Die Gesetze der Angelsachsen》(1903~1916) 3권이 가장 포괄적인 사료 편집본으로 평가된다. 파트릭 워몰드(Patrick Wormald)의 《The Making of English Law》(1999) 또한 중요한 현대 연구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