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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파니치

앤서니 파니치(Anthony Panizzi, 본명: Antonio Genesio Maria Panizzi, 1797년 9월 16일 – 1879년 4월 8일)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사서이자 이탈리아 민족주의 운동가이다. 그는 1856년부터 1866년까지 영국 대영박물관의 수석 사서(Principal Librarian)를 역임한 인물로, 근대 도서관학과 목록 편성 규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파니치는 이탈리아 모데나 공작령(현재 레조에밀리아주)의 브레셀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레지오의 리체움에서 수학한 후 1818년 파르마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브레셀로의 공립학교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 정권에 반대하던 비밀 결사인 카르보나리(Carbonari) 활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1822년 체포와 재판의 위협을 피해 이탈리아를 탈출하였다. 이후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당시 모데나 공작령의 탄압 정치를 비판하는 저서를 출판했고, 이로 인해 모데나에서는 그를 결석 재판으로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1823년 5월 런던으로 이주한 파니치는 리버풀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며 생활했고, 이후 정치가 헨리 브로엄의 도움으로 런던 대학교(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이탈리아어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832년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1831년 파니치는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보조 사서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인쇄도서 담당관(1837–1856), 수석 사서(1856–1866) 직을 거쳤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장서는 23만 5천 권에서 54만 권으로 증가하여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되었다. 그는 건축가 시드니 스마이크가 설계한 유명한 원형 열람실(Round Reading Room)의 초기 구상을 직접 제공했으며, 이 열람실은 1857년 개관하였다.

파니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1841년 마련한 '91개 목록 규칙'(Ninety-One Cataloguing Rules)이다. 이 규칙은 이후 19세기와 20세기의 도서관 목록 편성 규칙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그는 1842년 저작권법을 통해 영국 출판사들이 모든 출판물을 박물관 도서관에 납본하도록 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학습에 대한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빈곤한 학생이 부유한 사람과 동등한 조건으로 도서관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파니치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계속 관여하였다. 그는 조제프 마치니가 런던에 망명 중일 때 그를 도왔으며, 주세페 가리발디의 영국 방문을 주선하고 윌리엄 글래드스톤이 나폴리 정치범들의 열악한 수용 조건을 직접 확인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1868년에는 이탈리아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의석을 차지하지 않았다.

파니치는 1869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나이트 작위(대영 제국의 목욕 훈장 사령관, KCB)를 받았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 학위와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 다수의 명예를 받았다. 그는 1879년 4월 8일 런던에서 사망했으며, 켄살 그린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영도서관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5년부터 매년 '파니치 강좌'(Panizzi Lectures)를 개최하고 있으며, 그가 개발한 서가 지지 핀('파니치 핀') 또한 그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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