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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피셔

앤드루 피셔(Andrew Fisher, 1862년 8월 29일 ~ 1928년 10월 22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정치인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제5대 총리를 세 차례(1908~1909년, 1910~1913년, 1914~1915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ALP)의 지도자로서 활동했으며, 1910년 연방 총선에서 노동당을 사상 최초의 연방 정부 다수당으로 이끌어 세계 최초의 노동당 다수당 정부를 수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셔는 스코틀랜드 에어셔(Ayrshire) 주 크로스하우스(Crosshouse)에서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근 탄광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17세에 에어셔 광부 노동조합 지역 지부 서기로 선출되었다. 이후 노동조합 활동에 깊이 관여하다가 1885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퀸즐랜드주 짐피(Gympie)에 정착했다. 그는 광부이자 노동조합 조직가로 활동하며 지역 노동운동의 중심 인물로 성장했고, 1893년 퀸즐랜드주 의회에 노동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성립되면서 피셔는 연방 하원 의원(와이드베이 선거구)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1904년 크리스 왓슨 정부에서 통상부 장관을 잠시 지냈고, 1905년 노동당 부대표, 1907년 당 대표로 승진했다. 1908년 11월 피셔는 소수 정부를 이끌며 처음으로 총리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6월 알프레드 디킨이 이끄는 자유당 연합에 의해 정권을 내주었다.

1910년 연방 총선에서 노동당이 하원과 상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피셔는 두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두 번째 정부는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했는데, 노령연금과 장애연금 확대, 산모 수당 도입, 연방은행(Commonwealth Bank) 설립, 호주 왕립해군 확장, 대륙횡단철도 착공,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ACT) 공식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법안과 산업분쟁 조정·중재 제도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191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하원 다수당을 잃으면서 피셔는 총리직을 조지프 쿡에게 넘겼으나, 1914년 최초의 이중해산 총선에서 노동당이 다시 승리하여 세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이 선거 기간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으며, 피셔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을 "마지막 한 사람과 마지막 한 실링까지" 지키겠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수행의 부담 속에서 1915년 10월 총리직을 사임하고 부총리였던 빌리 휴스에게 자리를 넘겼다.

피셔는 이후 1916년부터 1921년까지 영국 주재 오스트레일리아 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으로 재임했다. 그는 징병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여 징병제를 추진한 휴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고등판무관 임기를 마친 후 잠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왔으나 정치에 복귀하지 않고 런던으로 이주하여 은퇴 생활을 했다. 말년에는 조기 치매로 추정되는 인지 기능 저하를 겪었으며, 1928년 9월 독감에 걸린 후 합병증으로 66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는 해외에서 사망한 세 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전직 총리 중 한 명이다.

피셔의 총리 재임 기간은 누적 약 5년으로, 노동당 출신 총리 중 밥 호크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그의 정부는 사회복지, 경제 개발, 노사 관계,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입법을 추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적 평가에서 피셔는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008년과 2009년에 출간된 전기들을 계기로 노동당을 정당한 집권 세력으로 확립하고 당의 정책 강령을 정치적 타협 없이 실현한 인물로 재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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