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드보락(Ann Dvorak, 1911년 8월 2일 ~ 1979년 12월 10일)은 미국의 무대 및 영화 배우이다. 본명은 애나 매킴(Anna McKim)으로,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위암이었다.
생애 및 가족
앤 드보락은 무성영화 배우였던 어머니 애나 레르(Anna Lehr)와 감독이었던 아버지 에드윈 매킴(Edwin McKim)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뉴욕에서 세인트 캐서린 수녀원 학교를 다녔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 헐리우드의 페이지 여학교를 다녔다. 부모는 1916년 별거하고 1920년 이혼하였으며, 그녀는 13년 동안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경력
드보락은 다섯 살 때인 1916년 무성영화 《라모나》(Ramona)에 '베이비 애나 레르'라는 이름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하였다. 이후 《더 맨 헤이터》(The Man Hater, 1917) 등 아역 역할에 출연하다가 잠시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MGM에서 새미 리(Sammy Lee)의 조수 겸 안무 보조로 일하며 합창단원이나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배우 캐런 몰리(Karen Morley)의 소개로 영화 제작자 하워드 휴스(Howard Hughes)를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극적인 역할의 여배우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1932년 폴 무니(Paul Muni) 주연의 《스카페이스》(Scarface)에서 무니의 여동생 체스카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같은 해 《쓰리 온 어 매치》(Three on a Match, 1932)에서 베티 데이비스, 조앤 블론델과 함께 출연하였고, 제임스 캐그니와 함께한 《더 크라우드 로어스》(The Crowd Roars, 1932), 스펜서 트레이시와 함께한 《스카이 데블스》(Sky Devils, 1932) 등 프리코드(pre-Code) 시기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30년대 워너브라더스의 주요 여배우로 활약하며 다양한 로맨스 및 멜로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1937년에는 《더 케이스 오브 더 스터터링 비숍》(The Case of the Stuttering Bishop)에서 돈 우즈가 연기한 페리 메이슨의 비서 델라 스트리트 역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당시 남편이었던 레슬리 펜턴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구급차 운전사로 활동하면서 몇몇 영국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194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 《존경받는 창녀》(The Respectful Prostitute)에 출연하여 유일한 브로드웨이 무대 경력을 남겼다.
개인사
드보락은 1932년 19세의 나이에 영국 출신 공연 상대역이었던 레슬리 펜턴과 비행기를 타고 도피 결혼(elopement)하였다. 이로 인해 계약상의 의무를 어기게 되면서 워너브라더스와의 계약 분쟁 및 급여 논쟁이 발생했으며, 그녀는 자신이 《쓰리 온 어 매치》에서 자신의 아들을 연기한 소년과 같은 금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녀는 워너브라더스의 계약 정지 조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1936년 법원은 계약 위반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펜턴과의 결혼은 1946년 이혼으로 끝났다. 1947년에는 러시아 출신 무용수 이고르 데가와 결혼했으나 2년 후 이혼했다. 1952년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세 번째 남편 니콜라스 웨이드와 결혼하여 그가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부부로 지냈다. 자녀는 없었다. 1959년 남편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
사망 및 유산
드보락은 사망 몇 주 전부터 심한 복통을 겪었고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1979년 12월 10일 호놀룰루에서 6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화장 후 유골은 와이키키 해변에 뿌려졌다.
그녀는 영화 산업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1960년 2월 8일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 6321 헐리우드 블러바드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별을 받았다.
성(姓) '드보락'의 발음에 대해서는 1936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The Literary Digest)에서 직접 "내 가명은 '보르샥(vor'shack)'으로 정확히 발음되며, D는 묵음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